견당사(遣唐使) 파견과 동아시아의 교류
- 최초 등록일
- 2015.01.02
- 최종 저작일
- 2010.12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500원
소개글
신라․일본 교역의 정리 및 분석 보고서
목차
Ⅰ. 머리말
Ⅱ. 일본역사속의 견당사
1. 견당사와 근대 일본
Ⅲ. 신라와의 교류
1. 정창원 보물로 본 신라와의 교류
2. 신라․일본 교역의 역사적 배경
3. 9세기의 신라· 일본 교역
Ⅳ.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대 일본의 대외 관계를 생각할 때는 반드시 견당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견당사(遣唐使)’란 고대일본의 지배층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하여 당나라에 파견한 공식 사절단을 지칭한다. 이누가미노 미타스키일행이 처음 당에 파견된 이래, 894년에 중지될 때까지 “264년간 지속된 초장기적이고 장대한 국가적 사업”이었다는 평가가 있으며 총 18회의 견당사가 임명되었다. 그 중 894년을 포함한 3회의 중단을 제외하면 실제로 당에 건너간 견당사는 15회이며 약 20년에 1번꼴로 당에 파견된 셈이 된다.
견당사에 앞서 수 나라에 파견된 견수사의 학문승, 학문생들은 수의 멸망과 당의 탄생이라는 격동기를 중국에서 보내며, 당이 번영해 가는 모습을 견문하여 일본에 돌아왔다. 그들은 “그 대당국은 법식이 정비되고 체제가 갖춰진 진귀한 나라이다. 항상 다녀 배워야한다”고 조정에 진언하였다. 견당사의 파견은 바로 이 진언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견당사를 통해 당의 정치제도가 도입되고,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화려한 당의 문물도 들어오게 되었다. 나라의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당물은 물론이거니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서역의 문물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견당사가 장안을 비롯한 당의 유력한 도시를 무대로 하여 문물교류가 성행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당 문명의 수입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일본화’했으며 그 후에는 견당사의 필요성이 낮아져 결국 이를 폐지하고, 이윽고 헤이안 시대의 국풍문화(國風文化. 10세기 중엽~12세기 말에 해당하는 헤이안 시대 중후기의 일본적 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시대에서 헤이안 시대에 걸쳐 일본의 정치나 문화에 미친 당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당의 선진문물을 전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한 견당사가 일본 고대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 미친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글은 견당사의 파견에 있어서의 동아시아의 교류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제시되었으며, 매우 광범위한 견당사 전반에 대한 문화교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8세기 이래 일본과 신라 사이의 교류의 성격을 재검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참고 자료
이성시, 1994, “동아시아 왕권과 교역”, 서울: 청년사
김은숙.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일본 최후의 遣唐使 파견과 張保皐 勢力 신라와 견당사」42(2006): 279-312
조이옥.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학 : 8세기 중엽(中葉) 일본의 견당사(遣唐使)와 발해」20(2003):177-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