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불교와 천태종
- 최초 등록일
- 2014.12.3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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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려 이전의 불교사상의 전개
1) 삼국기의 불교수용
2) 통일신라기의 교종의 활동
3) 신라 하대의 선종의 등장
2. 고려 초 불교사상의 전개
1) 고려 초의 교선융합사조
2) 광종대의 불교통합운동
3) 현종대 이후의 불교계
3. 천태교학
1) 의천과 천태종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고려 일대를 통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한 이데올로기는 불교였다. 불교는 왕실과 민간의 신앙 대상이었으며,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호ㆍ육성했다. 당시의 불교는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고려 건국과정에서는 호족 세력과 연결된 선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정비되면서 그에 적합한 교종 우위의 불교 정책이 추진되고, 균여(均如) 등의 활약에 힘입어 화엄종ㆍ법상종을 비롯한 교종이 우세해졌다. 특히 문종의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교관겸수(敎觀兼修)를 내세우며 천태종을 유포하여, 교종의 입장에서 교선의 일치를 추구했다.
신라 하대에 이어 고려에 들어와서도 계속된 교·선의 사상적 대립을 지나 통일의 노력까지 여러 단계를 통해 변화한 고려 전기의 불교사상을 알아보겠다.
Ⅱ. 본론
1. 고려 이전의 불교사상의 전개
1) 삼국기의 불교수용 : 무교에서 불교로의 변화
불교는 4세기 중반 이후 전래되기 시작하였으며, 고구려에서는 372년(소수림왕 2년), 백제에서는 384년(침류왕 1년), 신라에서는 527년(법흥왕 14년)에 각각 공인되었다. 특히, 중고기(中古期)의 신라는 불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진문물제도를 수입하여 당시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불교치국책’을 실시하였다. 당시의 승려는 종교적인 임무도 맡았지만, 세속적 임무도 동시에 수행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불교이념으로 왕실권위를 강화하고, 국가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우선 중고기 동안에 국왕의 이름을 불교식으로 짓는 ‘불교식 왕명시대’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신라왕이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사상이 퍼졌고, 그와 동시에 왕실은 석가모니종족, 곧 ‘크샤트리아’라는 진종설(眞種設)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신라왕은 이상적인 정복군주인 전륜성왕으로 간주되었고, 화랑은 미륵의 화신(化身)으로 보았다.
불교는 지배층의 후원 아래 급속하게 발전하여 무교를 제치고,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다. 황룡사를 비롯한 크고 웅장한 사원이 창건되었고, 불교교단에 대한 제도적인 정비의 하나로서 승정기구가 설치되었다.
참고 자료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이병욱, 혜안, 2002
『한국역사』,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1993
『한국불교사 연구 입문』, 최병헌 외, 지식산업사, 2013
『한국사』 16 고려전기의 종교와 사상, 국사편찬위원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