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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작하며
2. 일본의 자국내 미두시장 규제와 인천미두取引所의 성립
2.1. 일본의 미두시장 정책
2.2. 삼국간섭와 일본 간섭의 약화
2.3. 인천미두取引所의 설립
2.4. 인천미두取引所 성립 이후 효과와 일본의 통제
3. 미두시장의 투기적 성격: 리스크 헤지 행동 모형
3.1. 리스크 헤지 행동 모형
3.2. 미두시장 분석
4. 마치며
본문내용
1. 시작하며
본래 제물포로 불리던 한적한 어촌이었던 인천항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일본으로의 미곡 수출은,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일본 상인 세력이 조선 시장에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함에 따라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자 일본 상인 카쿠 에이타로(加来栄太郎)와 나가이 후사키치(永井房吉)를 중심으로 쌀과 대두를 포함한 여러 재화를 거래하는 取引所(거래소)의 설립이 추진되었고, 1896년 5월 5일 쌀과 대두의 현물거래와 선물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仁川米豆取引所가 설립되었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인천미두取引所에 대해 주로 일제의 수탈 도구이자 농민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투기의 장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예컨대 〈仁川米豆取引所 沿革〉의 역자는 인천미두取引所에 대해 “일본이 미곡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설립한 기관”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다른 연구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를 인용하여, 미두시장이 일본의 수탈상을 현장감 있게 제공하고 있으며, “조선인들을 나약한 인간형으로 변형시키고 길들였던 일본의 교묘한 장치이자 '돈'의 노예로 전락케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조선에 미두取引所가 설립되었던 시기의 역사적 맥락과 일본의 정책을 종합하면, 이러한 미두取引所의 收奪的 目的性과 意圖性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인천의 미곡시장이 쌀 수출 증가라는 국제경제적 정세와 맞물리며 自然發生하였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미두取引所의 등장 역시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종래의 연구는 미두시장을 주된 속성을 “투기성”으로 단정하며, 〈탁류〉와 같은 문학작품과 “期米계의 풍운아”으로 불리던 반복창과 같이 투기로 성공한 인물의 사례를 인용하여 직관적이고 단순한 근거를 제시할 뿐, 실증적 자료에 근거한 주장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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