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난
- 최초 등록일
- 2014.10.12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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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지배계층의 반란
1. 왕규의 난
2. 강조의 정변
3. 이자겸의 난
4. 묘청의 난
5. 무신의 난
(1) 김보당의 난
(2) 조위총의 난
6. 기철의 난
7. 위화도회군과 조선건국
Ⅱ. 하층세력의 반란
1. 만적의 난
2. 망이 망소이의 난
3. 김사미 효심의 난
Ⅲ. 참고문헌
Ⅳ. 발제
본문내용
Ⅰ. 지배계층의 반란
1. 왕규의 난
a. 배경
943년에 태조가 죽고 혜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왕권은 극도로 불안하였다. 혜종은 태자 때부터 강력한 호족출신인 박술희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었으나, 왕권을 노리는 적대세력은 많았고, 더 강력하였다.
왕규는 혜종의 후견세력인 박술희 세력을 제압하고, 왕위를 탈취하기 위해 노골적인 행동을 취하였는데 혜종대의 왕위쟁탈전의 원인은 혜종의 세력기반이 미약한 데 있었다.
왕규는 광주를 기반으로 한 호족출신으로 태조를 섬겨 대광까지 되었다. 또한 두 딸을 태조의 제15·16비(妃)로 들였는데, 제16비는 광주원군을 낳았다. 이처럼 왕규는 강력한 호족으로, 왕실의 외척으로서 태조 만년에는 막강한 실력자로 있었다.
그는 태조에게는 충성했으나, 혜종의 왕권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혜종을 죽이고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세우고자 하였다.
b. 경과와 결과
그는 두 차례에 걸쳐 혜종 살해를 시도하였다. 한번은 혜종의 침실에 자객을 잠입시켜 죽이려 했는데, 마침 혜종이 잠에서 깨어 자객을 한 주먹에 때려 죽여서 위기를 모면하였다.
또, 한번은 직접 무리를 이끌고 밤에 혜종의 침실을 급습했으나 혜종은 이미 다른 데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혜종은 최지몽이 무슨 변이 있을 테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몰래 중광전으로 피한 것이다.
왕규의 세력이 혜종의 왕권을 압도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세력기반이 약한 혜종은 그를 문책하거나 응징하지 못하였다. 당시 혜종의 후견인으로서 왕규와 대립관계에 있던 박술희 역시 자신의 신변보호에 급급하였다.
그리고 왕실 내에서도 혜종의 이복동생 요는 서경의 왕식렴세력과 결탁,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혜종은 주위에 항상 갑사들을 수행시켰고, 암살 위협에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혜종이 즉위 이래 병석에 눕게 된 것도 이러한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논문: 이인, 전남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2008.2
논문: 뎀브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2010.2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전영옥 저 「고려중기의 민란에 관한 고찰」
박영규 저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 실록」
박용운 저 「고려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