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화기 건축 ( 1876 ~ 1910 )
1) 외래건축의 수용 과정
2) 서양식 건축이 유입된 경로
① 개항 초기 조계지에 지어지는 외국인들의 건축물
② 서울을 중심으로 지어지는 외국공관과 상업건물
③ 외래 종교계통의 건축 - 교회당, 학교, 병원, 선교사 주택
④ 일본계의 유사 서양식 건축
⑤ 한국인 스스로 외국문물에 자극받아 새로운 시도를 한 것
2. 일제강점기 건축 ( 1910 ~ 1945 )
1) 도시주택의 변천
① 주택개량운동
② 개량한옥
2) 새로운 주택형식의 모색 - 주택유형간의 융합
① 조선영단주택
② 국민주택
3. 현대 건축 ( 1945년 이후 ~ )
1) 광복 직후의 건축
2) 1950년대의 건축
3) 1960~1970년대의 건축
4) 1980년대 이후의 건축
참고문헌
본문내용
우리에게 근대적 의미의 신건축은 1876년 개항 이후 들어왔다.
그것은 이전에 없던 것으로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양식이 유입된 것이었다.
이 양식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도입해 온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에서 타율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건축에 머물러 있던 우리 건축사고는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일본은 부산 개항 이후 1879년 초량왜관 자리에 영사관을 세웠다.
이후 원산을 위시해서 각 개항장에 소위 의양풍 목조 2층 공관건물들을 세웠다. 일제는 우리 땅을 자신들의 병참기지화하려 했고 건축물과 건축가는 그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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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일제의 건축물은 마음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새로운 행정수요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일제에 예속되며 우리는 일본 신건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0년간에 걸쳐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은 규모가 가장 큰 것이었다. 한국은행, 서울역, 그리고 서울시청도 그 일환이었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 양식, 즉 근대주의 건물이 개별적인 형태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일제 하 교육을 받은 우리 건축가들은 그들의 식민 건축 활동에 도구로 존재했다.
1930년 초부터 우리 건축가에 의한 설계된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박길룡(1898~1943)은 우리 건축을 개척한 선두 건축가였다. 그는 우리 사회와 자본의 지원으로 몇몇 건축을 세워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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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기술 측면에서 1960년대에는 이전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기술이 도입된다. 철골 구조가 등장하고, 타워 크레인 등 시공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고 조립식 공법이 도입된다. 이에 따라 건물은 대형화 고층화된다. 또 중앙 집중식 난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수세식 변기도 널리 보급된다.
이 시기에는 경제 성장,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 등에 의해 도시로 인구가 더욱 더 집중되어 대도시의 주택난이 더 심화되며 새로운 주거 형식인 아파트가 정착된다.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전통 마을이 옛 모습을 상실하는 것도 70년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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