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내관들의 생활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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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내관이 되는 방법과 수련과정
1) 방법
2) 수련과정
3. 업무의 종류와 근무처
1) 내관의 업무
2) 조직과 근무처
3) 승진과 근무평가
4. 내관의 개인생활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글은 조선시대 왕실 속에서 왕실의 그림자로 살아간 내관들의 생활을 연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내관들은 왕실 안에서 하나의 조직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내관은 궁 안에서의 영향력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내관의 연구는 조선 왕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내관의 유래는 『삼국사기』신라본기에 흥덕왕이 왕비가 죽은 후 신하들이 새로 왕비를 맞을 것을 청하나 듣지 않고 시녀들까지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심부름꾼으로 오직 환관뿐이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통일신라시대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거세한 환관이 아닌 가문과 학식, 재능이 뛰어난 엘리트 집단으로 변화되었다.
<중 략>
왕과 왕실의 그림자로만 살아가며 평생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상태로 살아야 했던 내관들은 어떻게 궁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왕족들의 삶에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웠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이기 때문에 대를 이어 집안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신분을 불문하고 당연히 여기는 바램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관이 된 자들은 어렸을 적 불의의 사고로 인해 된 경우도 있지만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출세를 하기 위해서 된 자들의 경우가 많았다.
내관이 되는 과정은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궁형이 없었으므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자를 내시로 충원했으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인위적으로 내시를 양산했다.
<중 략>
내관들은 어떤 방법으로 승진을 하였을까? 그 방법은 2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시험을 통해 품계를 올려 주는 것이다. 내관도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내관들은 유학에 대한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 체계적인 교육과 평가를 정기적으로 시험을 통해 평가했다. 두 번째는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의 기록을 보면 관리들은 양도목이라고 해서 6월15일과 12월15일에 근무 평정을 받았지만 내관들은 1년에 네 번 평가를 해서 사도목이라 하고 승정원에서 관리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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