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박지원의 작품세계-호질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3.06.24
- 최종 저작일
- 2003.06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
목차
1. 박지원의 생애
2. 박지원의 사상과 세계관
3. 박지원의 작품세계
4. 호질(虎叱)
본문내용
1. 박지원의 생애
박지원(朴趾源)은 영조(英祖) 13년(1737)에 태어나 순조(純祖) 5년(1805)에 세상을 떠난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 학자이다. 호는 연암(燕巖)이고, 자는 중미(仲美)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정2품의 지돈녕부사를 지낸 할아버지 박필균의 밑에서 자라게 된다. 조부는 노론측 인사였으나 당쟁을 싫어했던 탓에 당론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없었고 또한 청렴하여 축재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가난하게 살았다. 16세인 1752년에 이보천의 딸과 혼인했다. 모친과 조부가 사망하자 생활은 궁핍해지고, 이 무렵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고, 그 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한다. 박제가, 유득공 등과 학문적 교류를 가지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로 당대 최고의 학자 홍대용, 이덕무, 등과 자주 토론하였고, 서부 지방을 여행하기도 한다. 이 무렵부터 박제가 이서구 등이 제자로 입문되고 북학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1776년 영조가 사망하자 홍국영은 세도를 잡고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때 박지원은 홍국영의 화를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 골짜기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의 아호가 연암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는 연암 골짜기에 있는 동안 농사와 목축에 대한 장려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1780년 삼종형 박명원이 청의 고종 70세 진하 사절 정사로 북경을 갈 때 동행하여 5개월간 압록강을 거쳐 북경, 열하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온다. 이때에 보고들은 내용을 정리하여 [열하일기]를 저술한다. 박지원은 당시 박제가(朴齊家)와 함께 북학파의 영수로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한 조선의 현실을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열하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80
[한국문학강의], 조동일 공저, 길벗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김지용, 한양대학교 출판부
[열하일기 연구], 김명호,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