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고대역사 특강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신라 중대=전제왕권시대’설
3. 전제 왕권의 의미
4. 신라 중대에서의 화백회의 上大等과
집사부 中侍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신라 중대는 태종 무열왕, 즉 김춘추가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이뤄냈다. 따라서 분명 신라 정치나 사회적으로 큰 변동을 겪었음은 물론, 독특한 신라 중대만의 특징을 구축해왔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기백 선생은 이 시기를 특징짓는 현상으로 ‘전제왕권’을 언급한다. 태종 무열왕부터 시작된 전제왕권은 발전을 거듭하다 혜공왕 대에 이르면 그 정치체제가 크게 흔들리며 스러진다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집사부와 중시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기백 선생의 주장에 따른 학계의 반응도 무척이나 활발하고, 그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쟁의 쟁점을 살피고 중대를 과연 전제왕권시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기백의 ‘신라 중대=전제왕권시대설’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의 전제왕권 의미를 구해본 뒤, 그 주장의 근거의 중점에 있는 상대등과 중시에 대해 살펴보고 마무리 짓는 순서로 하겠다.
<중 략>
그가 정책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중대에 이르면 화백회의의 위상이 다소 약해진 것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이기백의 규정한 전제왕권과 같은 양상은 중대의 정치형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겠다. 그리고 기본적인 이해에 바탕이 되는 ‘상대등은 귀족회의체의 장으로써 왕권에 반하는 세력이고, 중시는 왕의 측근이다.’하는 것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양 측의 힘의 기울기에 따라 왕권의 강약을 측정하는 것도 일관성 있게 옳은 것은 아님을 이해해야한다. 따라서 신라 중대에 상대등을 중심으로 한 화백회의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굳이 중대의 전제왕권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도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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