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 이후 결혼의 역사 -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신여성의 결혼 양상, 연애결혼 선망, 신식결혼식
- 최초 등록일
- 2014.06.22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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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양장의 모단걸 - 뾰족구두에 모자 쓴 멋쟁이
2. 결혼은 자유로, 이혼도 떳떳이
3. 신여성의 결혼 양상
4. 연애결혼 선망
5. 신식결혼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양장의 모단걸 - 뾰족구두에 모자 쓴 멋쟁이
신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 전후의 역사적 산물로 등장합니다. 그것은 전쟁 중 남성노동력을 여성이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산업역군이 된 여성이 종래 가정을 지키던 현모양처 여성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인격체로 부상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즉 1920년대 신 여성은 하나의 사회세력을 형성하고서 당시 세계를 휩쓴 여성해방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남녀에 관한 종래의 사회적 인식은 크게 흔들렸고 여성의 생활양상은 조금씩 변하였습니다.
한국의 신여성은 19세기 말 이른바 개화기에 교육받은 여성의 뒤를 이어 계속 여성 스스로 여성교육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사회활동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여성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의식을 가지고 사회현실에 눈뜨기 시작한 이들 신영성은 일제식민지 시기에 들어와 더욱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강조하는 한편 세계 여성해방의 선진적 조류를 받아들이는 데 앞장 섰습니다. 신여성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고 뾰족한 가죽구두에 짧은 머리, 양장 차림에 양산을 쓰고 손에는 장갑, 머리에는 모자 등 일단 서양식 맵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모습에서는 개항기 단발령에 항거해 목숨을 내걸던 이른바 ‘척양척왜’의 흔적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서양식 건물이나 교회에서 혼례를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여성부부는 이른바 서양식 문화주택에서 커튼을 드리우고 침대와 피아노가 있어야 문화생활을 누린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활동하기에 편리한 한복래량과 흰옷 대신 집안 일을 줄일 수 있는 유색옷 입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학생이나 직업여성 사이에 트레머리와 파마가 유행한 것도 신여성의 생활에서 탓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참고 자료
이배용 저,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최혜실 저,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생각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