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성리학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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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예송논쟁
(1) 1차 예송
(2) 2차 예송
3. 호락논쟁
(1) 인물성동이론의 발단
(2) 호락논쟁의 전개
(3) 결론
4. 조선 후기의 양명학
(1) 중국양명학과 조선양명학
(2) 조선양명학의 성립- 장유: 태허라는 관념적인 기. 이이와 차이점.
(3) 조선양명학의 전개
(4) 강화학파의 활동
(5) 양명학과 소론
5. 맺음말
본문내용
1. 들어가며
17세기의 사상계의 조류는 예학의 발달과 관련하여 촉발된 예송논쟁, 성리학의 발달과 관련한 호락논쟁, 성리학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논의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한 조선양명학의 발달이라는 중요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이 세 가지의 주제를 통해 17세기 이래의 조선 후기 사상계의 동향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였다. 예송논쟁은 복잡한 왕위계승과 예학의 발달 과정에서 제왕가례와 보편적인 가례관념의 충돌로 특징 지워지며 1차와 2차로 나누어 전자의 학문적 논쟁에서 후자의 정치적 논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호락논쟁은 인물성에 대한 동이(同異)를 두고 영남학파 내부에서 논란이 개시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논란이 전개된 것은 기호학파로서, 그들이 호론과 낙론이라고 하는 두 입장으로 분화하면서 그 논의를 심화시키고 있었다. 조선양명학은 성리학의 발달 과정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일정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논리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양명학을 수용한 측은 대체로 소론, 강화학파로 계승되었으며 정쟁으로 인해 소수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여 그 역사적 의미까지도 미약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중 략>
우리가 경험적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성품으로서 기질의 성을 성품의 기준으로 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인간과 사물의 성품도 기질에 따라 다르며 기질의 흐리고 밝음에 따라 성품에 선과 악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과 물이 같은 이를 갖추고 있지만 기질에 따라 성은 다르며 사람들 사이에도 기질에 따라 오상의 성에 편차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인물성동이론의 쟁점은 성품 자체를 기질적 제약을 초월한 보편적 본체로 보는 동론과 성품을 기질적 제약을 받은 독립적 존재로 보는 이론의 개념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이 쟁점은 영남학파에서 먼저 발생하였고 논의되었지만, 제한된 범위에서의 토론에서만 끝이 났다. 이에 비해 기호학파에서는 이 논쟁이 심화되어 호서지역(湖論)과 서울 주위(洛論)로 분열되면서 이 시기 성리학의 가장 큰 이론적 특징으로 주목되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0·35, 과천:국사편찬위원회,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