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사회와 문화 (석굴암과 불국사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4.06.18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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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서론
II.본론
1. 신라 중대의 사회 문화 상
2. 신라 중대의 불교 문화유산
III.맺음말
본문내용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상대(上代), 중대(中代), 하대(下代)로 구분했다. 그들은 삼국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태종무열왕에서 반란의 과정으로 살해당한 혜공왕까지를 신라 역사의 중심인 ‘중대’로 설정하였다.
이는 신라 때부터 이미 삼국 통일을 신라사의 획기적 분기로 여겼음을 보여주며, 그들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대를 신라 역사의 중심이자, 최고의 전성기로 생각 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글에서는 신라 최고 전성기의 신라 중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신라 중대의 어떠한 사회 문화적 특성들이 통일 신라의 화려한 불교 문화의 번영을 이끌어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
신라 중대의 사회 문화 상
중대 신라 왕실의 중앙 집권 정책
무열왕은 집권 후에 진골 세력을 대변하는 ‘대등회의’를 어떻게 하면 무력화시키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했다. 그는 친당 정책을 이용하여, 유교 정치 이념을 수용해 관료제의 확립과 왕권 강화라는 내정개혁을 단행하고자 하였다. 무열왕은 왕의 비서 기구를 한층 강화했고, 왕이 임명하는 재상들을 통해 정책을 의결하고 집행하는 새로운 정치 운영 체제를 도입했다. 또, 왕의 직계 조상만 제사 지내고, 태자 제도를 강화해 왕위의 직계 적통 계승을 내세워 왕권을 확립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어 즉위한 문무왕은 무열왕의 시호를 천자와 대등한 ‘태종’으로 하고, 고구려 왕족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해 제후국을 거느린 군주로서 왕권의 위상을 드높였다. 또, 왕을 보좌하는 두품(頭品)관료들의 경제 기반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녹봉제를 실시해, 진골 중심의 대등 체제를 왕을 중심으로 한 관료제로 쇄신하기 위한 기초를 닦았다.
참고 자료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 강종훈, 송호정, 윤선태, 임기환 | 웅진 지식하우스 | 2011
고대 문화의 완성 통일신라 •발해 | 김현희, 윤상덕, 김동우 | 국립 중앙 박물관 | 2005
신라의 삼국통일과 삼국의 문화 | 김종성 | 문예마당 | 2004
석굴암 그 이념의 미학 | 성낙주 | 개마고원 | 2009
문화의 안과 밖| 최준식 | 네이버캐스트 |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