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영적대각성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4.06.1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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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19세기는 18세기의 흐름을 이어갔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로서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시대요, 과학혁명과 철학혁명의 시대요, 기독교의 자연종교화의 시대요,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의 시대였다. 그리고 동시에 독일의 경건주의의에 의한 교회의 내실화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이 있었고 영국의 웨슬리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과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와 청교도들의 제1차 대각성운동이 있었던 시대이다. 이 같은 18세기의 역사의 흐름은 19세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즉, 19세기에 있어서 우럽전체의 급속한 세속화, 낭만주의와 관념로느 산업혁명, 식민지주의, 무엇보다도 독일의 자유주의적 개신교신학 등은 18세기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과 옥스퍼드운동, 대륙 일반의 복음주의적 부흥 및 미국의 제 2차 대각성운동은 18세기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적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1789년까지 1차 대각성운동의 영향력은 “프랑스인과 인디언의 동맹 전쟁”(1754-1760)중에 영국군 장교들에 의해서 식민주들에 소개된 이신론에 의해서, 이신론적인 문헌들의 수입에 의해서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에 의해서 크게 감소되었다. 예일대학은 이 기간의 타락한 종교적 정신을 예증한다. 중생을 고백하는 학샹들은 극히 드물었다. 도박, 불경, 악덕, 그리고 술취함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생들 중에서 보통이었다. 이러한 우울한 상태를 개선한 2차 대각성운동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연속해서 일어났다.
제 1차 대각성운동의 부흥 및 심각한 교리적 분쟁과 미국혁명을 포함한 두 전쟁과 오랫동안의 정치적 불안정 등의 상황 등으로 인해 뉴잉글랜드는 영적 침체기를 맞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제 2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806년 월리암스 대학교에서의 “근초더미 확약”을 시작하여 복음적 각성과 선교운동이 여러 대학에 파급되어 일어났다.
참고 자료
김영재 『기독교 교회사』(서울: 이레서원, 2001)
홍 철 『미국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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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세계교회사』
Stephen Neill, 『기독교선교사』홍치모. 오만규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