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문화 팔만대장경 발표
- 최초 등록일
- 2014.06.08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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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대장경 판각 연대
Ⅲ. 팔만대장경 판각 당시 시대적 배경
Ⅳ. 팔만대장경 판각 담당기구
Ⅴ. 팔만대장경 판각 장소
Ⅵ. 대장경의 의미
Ⅶ. 맺음말
본문내용
매년 늦봄에는 음력 석가탄신일을 前後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연등축제가 열린다. 이는 고려시대의 연등회와 팔관회 유래된 것으로, 그 가치 또한 엄청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고려시대의 불교는 단지 종교나 정치사상이 아닌, 당시 사람들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인에게 불교는 단순 종교가 아닌 그들의 정신적 원형이었다. 특히 高麗大藏經 경판의 조성이 그 핵심에 있다.
Ⅱ. 대장경 판각 연대
고려는 高麗大藏經 외에 初潮大藏經, 敎藏도 편찬했다.
초조대장경은 1011년(현종2, 신해년)부터 1087년(선종2, 정묘년), 약 76년간 제작하였다. 초조대장경은 거란군의 침략을 불력으로 격퇴하고자 조성하기 시작하였으며, 대구 부인사에 봉안되어있었다.
顯宗은 불우한 환경에서 즉위했고 또한 재위기간(1010년, 경술년~1031년, 신미년) 동안 끊임없이 침입하는 거란족과 맞서야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불교에 깊이 귀의하여 군신과 백성을 호국 일념으로 결속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초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의 완성은 대내외적으로는 부처님의 가호로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겨레를 지키려는 염원과 자주적인 문화국으로서의 긍지를 표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한 불교이념을 바탕으로 왕권과 국가체제를 강화하려는 데에도 뜻을 두고 있었다.
교장은 1092년(선종9, 임신년)부터 1101년(숙종6, 신사년), 약 9년간 교정을 보았으며 대각국사 의천이 초조대장경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했다.
의천은 대장경이 삼장(經, 律, 論)을 이루고 있더라도 章, 疏가없다면 부처님의 법을 전파하지 못한다고 하여 보완하였다. 하지만 초조대장경과 교장은 1232년(고종19) 몽고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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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 홈페이지 i80000.or.kr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
블로그 연도 별 간지 http://blog.daum.net/wlsvna1071/124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