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붉은악마 신드롬’을 통해서 본 치우천왕
- 최초 등록일
- 2014.06.07
- 최종 저작일
-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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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일반적인 신화의 문화컨텐츠화 양상
1. 그리스로마신화
2. 북유럽의 신화
3. 일본의 신화
Ⅲ. 치우천왕의 특수성
1. 역사적 근거
2. 당시 한국 국민의 정서
3. ‘치우천왕’이 함유한 이미지
Ⅳ. 평가
1. ‘붉은악마의 상징’이라는 상징성이 부족한 치우
2. 신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예
본문내용
Ⅰ. 서론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신드롬’으로 불리는 한국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월드컵 개최국의 자국 팀에 대한 열정적인 응원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2002년의 한국에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응원단이 거리를 메우고 열정적인 응원을 보여주었다. 전 국민이 참여하다시피 한 거리 응원전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여겨져 외신들의 주목을 받아 특이한 현상으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으며, 국내적으로는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학자들은 2002년의 ‘붉은악마’는 이후 한국에서 거리응원문화의 시작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화시위에 대한 인식을 퍼뜨렸다거나 또는 시위 일변도의 일방소통 문화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유래가 없던 현상이었고 이후 많은 영향을 초래한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는 ‘치우천왕’이다. ‘치우천왕’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를 일컫는 말로, 중국 신화에서는 중국의 시조신으로 여겨지는 황제와 대립한 인물로 등장하며, 우리나라의 민족사학계에서는 배달국의 14대 왕으로,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중 략>
하지만 1979년이 되어서야 등장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역사학계에서는 사료적 가치가 없는 위서로 판단되고 있다. 규원사화 의 경우에도 조선 숙종 때 북애자(北厓子)가 저술했다고 되어 있으나 각종 사서에 규원사화를 인용한 기록이 단 한 줄도 없고, 기록된 내용 또한 숙종 시기에 존재할 수 없던 내용이 있는 등 내용적 허구성으로 인해 역시 20세기 초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위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동이족을 한민족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통일 진 이후의 동이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동쪽인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는 중국 주변부의 다양한 종족집단을 통칭하는 용어였다. 이렇게 넓은 의미를 가진 동이를 예부터 한반도에 거주해왔던 민족과 동일시하는 것은 기존에 ‘한민족’이라는 용어가 한반도에 한정되어 사용된 것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치우가 동이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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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le1918 Redirect=Log&logNo=130045453236
붉은악마 공식 홈페이지 http://www.reddevil.or.kr/xe/index.php mid=trade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