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전남도청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5.28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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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남도청을 조사하기 전
2 구 전남도청의 역사
3 전남도청의 역사적 변화
4 20세기 후반
5 전남도청의 건축적 특징
6 전남도청의 보존에 대한 의의
본문내용
전남도청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기 전에 봤던 영화중에 오월애라는 영화가 기억이 난다. 오월애라는 영화는 광주의 518번 버스와 함께 시작됐다.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출신으로 살아남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한 광주시민이 운전하는 518번 버스. 특이한 건 촬영을 버스 내부에서 하다 보니 518이라는 숫자가 뒤집어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인 듯 했다. 굴절된 5.18. 비록 많은 이들이 5.18을 안다고 자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아직 우리는 5.18의 실상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그 동안 5.18은 너무도 많은 굴절을 겪어왔다. 국가에 의해서, 지식인들에 의해서, 정치인들에 의해서, 혹은 5.18을 듣고 배운 개인들에 의해서. 당장 1980년 5월의 광주를 생각해보자. 당시 5.18은 북괴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이 일으킨 소요사태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광주를 빨갱이들이 활개치는 도시로 지목했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옮겨 쓰기 바빴다.
<중 략>
전남도청의 중요성과 가치
구 전남도청 본관과 회의실을 비롯한 구 전남도청 일원은 전라남도의 행정적 중심이기도 했지만 광주광역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일제강점기부터 7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광주·전남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증언자가 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저항의 역사로부터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구 전남도청 일원은 광주·전남 지역의 역사 뿐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무대 중의 하나였다.
광주·전남의 행정적 중심지였던 구 전남도청 일원에 결정적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3년 5월 13일 광주 5·18대책의 일환으로 대통령특별담화를 통해 전남도청을 관내로 이전하는 대신 이 자리에 “5·18기념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 이후였다. 1999년 6월 도청이전 조례가 의결되기까지 전라남도의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1999년 7월 15일 조례가 공포되면서 전남 무안군 상향면 남악리로 신전남도청 소재기가 결정되었다. 전남도청은 2005년 11월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1000번지로 이전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