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2차 국공합작과 남경국민정부
- 최초 등록일
- 2014.04.23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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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시대적 상황
Ⅱ 본론
1. 군벌
2. 제 1차 국공합작
1) 성립배경
2) 제 1차 국공 합작의 의의
3. 남경국민정부
1) 성립과정
2) 성격과 역사적 의의
4. 제 2차 국공합작
1) 성립배경
2) 제 2차 국공합작의 의의
5. 1, 2차 국공합작의 비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 시대적 상황
- 내부적 상황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되었던 원세개는 1916년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만 군벌들의 반발과 이반된 민심 등으로 약 3개월 만에 제정을 취소하였다. 그러다가 1916년 6월 요독증으로 급사를 하게 되고 북쪽의 중화민국은 권력의 공백상태가 된다. 결국 서로 파벌을 이루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고, 중국대륙은 본격적인 군벌 시대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남쪽에서도 분열되어있었으며 많은 군벌이 난립하는 시기로 분열된 모습은 북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1919년에는 5.4 운동이 일어나면서 중국 내 마르크스주의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성립된다. 이 시기에 손문은 일본에서의 망명생활을 접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정부수립에 박차를 가한다.
<중 략>
1) 성립배경
제2차 국공합작은 장제스 군대의 장시[江西] 소비에트에 대한 포위를 벗어나 장정(長征)의 길에 오른 중국공산당은 1935년 8·1선언을 통하여, 만주사변 후 극심해진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한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제창하였다.
1936년 시안[西安]사건, 즉 북방의 군벌 장쉐량[張學良]이, 공산당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찾아온 장제스를 감금하였다가 극적으로 석방한 사건을 계기로 내전반대 ·일치항일(一致抗日)이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국민당 역시 협력관계를 모색하게 되었으며, 1937년 7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져 항일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2) 제 2차 국공합작의 의의
제 2차 국공합작의 가장 큰 의의는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중국 대륙의 침략을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경 정부와 공산당이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항일전의 승리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남으로써 통일되고 자주적인 중국을 건설하는 것에 국공합작의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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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講座 中國史7』 지식산업사 1997.
존 킹 페어뱅크, 멀 콜드만 저. 김형종, 신성곤 옮김『신중국사』까치글방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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