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과 해석학의 산술화 - 사영기하학, 해석기하학, 고차원 기하학, 미분기하학,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램, 해석학의 산술화
- 최초 등록일
- 2014.03.27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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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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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영기하학
1) 퐁슬레
2) 사영기하학
2. 해석기하학
1) 여러 좌표계
2) 해석기하학
3. 고차원 기하학
4. 미분기하학
5.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램
6. 해석학의 산술화
7. 바이어슈트라스와 리만
8. 칸토어, 크로네커, 푸앵카레
1) 칸토어(Georg Ferdinand Ludwig Philip Cantor, 1845-1918)
2)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3)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e, 1854-1912)
9. 소냐 코발레프스키와 에미 뇌더
1) 소냐 코발레프스키(Sonja Kovalevsky, 1850-1891)
2) 뇌더(Amalie Emmy Noether, 1882-1938)
본문내용
- 퐁슬레는 파리 고등이공과학교의 학생으로서 메츠의 육군 대학에서 몽주의 새로운 화법기하학 및 카르노의 <위치의 기하학>을 배웠다. 당시의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휘하에서 모스크바로 진격해 나갔으며, 러시아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모든 러시아군의 항복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시민들은 도시에 불을 지르고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결사항전으로 드디어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퇴각하게 만든다.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에서 브휴헤르와 결전하기 위해 휘하의 장병을 버려둔 채 퇴각하고 만다. 1812년 11월 18일, 네이 장군에게 인솔된 힘바진 프랑스의 패잔병은 크라스노이에서 적에게 압도되고, 전사자로 내버려진 장병들 속에 아직 숨이 붙어있는 퐁슬레가 있었다. 당시의 그는 공병 장교로서 장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러시아군 수색대는 그의 장교복을 보고 그를 심문하기 위하여 데리고 간다. 혹독한 추위 속에 많은 포로들이 쓰러져 감에도 건강한 육체를 타고난 퐁슬레는 약 5개월간의 기나긴 행군을 마치고 1813년 3월, 볼가 연안의 사라토프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퐁슬레는 포로생활의 괴로운 나날을 잊기 위해 이전에 배웠던 수학을 재현해 보려고 노력했다. 사영기하학은 이때에 만들어졌다. 아무런 책도 없이 약간의 필기구만을 가진 퐁슬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학을 혼자 복습하기 시작했다. 포로 동료들을 가르치려는 퐁슬레는 1814년 9월, ‘사라토프의 포로수용소에서 쓴 7권의 원고 노트 및 그밖의 작품-<도형의 사영적 성질에 관하여>’를 갖고 프랑스에 돌아왔다. 이 책은 1822년에 발행되었다. 이후 10년간(1815-1825년), 퐁슬레는 공병장교로서의 직무 때문에 기하학에 자기의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려는 참다운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장년기에 들어선 퐁슬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현재 일에 대한 의무감으로 몇 번이나 도피할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군대에서 뼛속 깊이 새겨진 잘못된 의무관념으로 그는 79세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내부의 갈등을 갖고 살아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