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체제의 형성과 독일교회의 반응
- 최초 등록일
- 2014.03.07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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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문제제기
2. 논문의 구성
Ⅱ. 히틀러 체제 형성과 독일 기독교의 대응
1. 히틀러 체제 형성의 정치경제, 심리적 배경
1) 정치경제적 배경
2) 심리적 배경
2. 독일교회의 상반된 반응: 찬동과 저항
Ⅲ. 참여와 저항의 경계
1. 신학적 입장의 차이
2.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한 해석의 차이
1) 루터의 두 왕국론
2) 독일교회에 대한 루터 ‘두 왕국론’의 영향
Ⅳ. 결론
1. 요약
2. 함의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1절. 문제제기
우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네모반듯한 건물들 사이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악을 목도하였다. 체계적인 감시 기구와 치밀한 학살 시스템은 관념론적 합리주의가 낳은 인간 자신이 인간을 멸망시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 뿐이었다. 히틀러 체제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명확하다. 독일은 나치즘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한다. 나치의 표식과 히틀러의 이름은 문명사회에서 악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히틀러 체제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이와 달랐다. 1930년대 형성기에 있는 히틀러 체제에 대해 독일 기독교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편은 찬동하였고, 다른 한편은 저항하였다. 찬동은 주변적인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교단 지도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이들도 역시 ‘민족의 미래’를 고뇌하였다. 저항은 찬동의 신학적 기초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기초를 천명하고 조직을 재편하였다. 그러나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저항은 방어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나의 주된 관심은, 히틀러 체제의 형성 시기에 독일 교회에서 나타난 상반된 두 흐름의 가장 유력한 차이를 추적하는 것에 있으며, 현재 이념의 갈등 속에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교회가 국가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2절. 논문의 구성
나는 먼저 제2장 제1절에서 히틀러 체제가 뿌리내린 역사적 토양을 살펴볼 것이다. 히틀러 체제는 역사 외부로부터 이식된 산물이 아니다. 히틀러 체제가 딛고 선 정치?경제적, 심리적 기반은 독일 교회의 그것이기도 하다. 제2장 제2절에서는 독일 기독교의 대응을, 찬동-저항의 축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확인할 것이다.
나의 주된 관심은 제3장에서 다루게 된다. 히틀러 체제의 형성에 대해 독일 교회에서 나타난 상반된 두 흐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인적 구성이나 사회경제적 지표 등이 아니라 신학적 입장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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