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멸망 미스테리 ppt
- 최초 등록일
- 2014.01.03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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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교과서에서 서술하는 발해의 멸망
1-1. 기존의 멸망 원인설
(1) 이원적 주민 구성론에 의한 고구려인 vs 말갈인의 불화설
(2) 이원적 주민 구성론에 대한 반박 의견
① 「유취국사」 해석의 오류
② 발해 내 말갈인의 규모 및 고구려 유민의 규모
2. 새롭게 제기 된 멸망 원인설
(1) 백두산 분화설
(2) 거란 급습설-지배층 내분설과 연계하여
3. 결론
본문내용
1. 교과서에서 서술하는 발해의 멸망
“…이후 해동성국이라 이를정도로 세력을 크게 떨쳤으나 내분으로 국력이 점차 약해졌다. 거란은 이 틈을 타서 발해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천재교육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의 주류를 이루었고, 대부분의 피지배층은 말갈족으로 구성된 나라였다…(중략)…발해가 멸망한 뒤에 발해의 유민은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각각 분리되었는데, 이 사실은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상호융합을 이루지 못하였음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발해의 취약한 결집력은 발해가 거란에게 쉽게 멸망당한 이유 중 하나이다.”
-공무원 수험서 통합한국사, 고시동네
지배층의 내분설 & 지배계층인 소수 고구려인과 피지배계층인 다수 말갈인의 갈등으로 서술
1-2. 기존의 멸망 원인설(이원적 주민 구성론)
(1) 이원적 주민 구성론에 의한 고구려인 vs 말갈인의 불화설
고구려인이 소수임을 주장하는 근거
“발해국은 고구려의 옛 땅이다...(중략)...그 넓이가 2천리이고 주·현의 숙소나 역은 없으나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모두 말갈의 마을이다.
<이하생략>
참고 자료
고광의 외 10인, 「발해의 역사와 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7
진재운, 「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 산지니, 2008
김종복, 「발해정치 외교사」, 일지사, 2009
주진오 외 7명,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2010
정재준·현창원, 「통합한국사」. 고시동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