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12.29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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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본고에서는 앙시앙레짐기의 기독교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혁명이 어떻게 기독교를 개혁했는지,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혁명이 이룩하고자 했던 사회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교회와 국가의 동거 : 앙시앙레짐
Ⅲ. 혁명의 교회개혁과 비기독교화 운동
1) 전반적인 개혁 : 종교개혁의 시작
2) 성직자민사기본법 : 성직자는 곧 국민
3) 격렬한 비기독교화 운동 : 혁명과 종교의 불가능한 동거
4)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Ⅳ. 종교혁명은 어떤 사회를 지향했는가?
Ⅴ. 나오며
본문내용
근대를 여는 혁명, 앙시앙레짐을 타파하려했던 혁명,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를 건설하려했던 혁명. 이것이 바로 발발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시민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이다. 혁명은 근대 이전의 시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절대주의 시대의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었으며, 이는 기존사회를 지탱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했던 기독교 패러다임을 전복시킴으로써 가능했다. 다시 말해, 혁명은 근대 이전의 사회와의 결별을 위해 종래 강력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독교를 깨부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앙시앙레짐기의 기독교는 어떠하였는가? 혁명이 기독교를 혁파(革罷)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혁명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가? 본고에서는 앙시앙레짐기의 기독교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혁명이 어떻게 기독교를 개혁했는지,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혁명이 이룩하고자 했던 사회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찰하도록 하겠다.
Ⅱ. 교회와 국가의 동거 : 앙시앙레짐
중세부터 18세기 중반 비기독교화 현상이 두드러지기 전까지, 기독교는 서구 유럽사회에서 강력한 권위를 인정받았다. 중세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신’이었으며, 이러한 ‘신’의 메신저인 성직자들은 3신분제의 꼭대기에 위치했다. 3신분은 각기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일하는 자’로서의 의무와 그것에 상응하는 권리를 지녔고, 유일한 식자층이었던 성직자 계층은 이러한 신분제도의 이론적 기틀을 강화했다. 이러한 신분제는 봉건제와 함께 중세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었으며, 기독교는 그 두 기둥의 ‘댓돌’이었다.
참고 자료
백인호, 『창과 십자가』, 소나무, 2004.
김갑수, 「프랑스 혁명」, 배영수 편저, 『서양사강의』, 한울 아카데미, 1992.
로제 샤르띠에 著, 백인호 역,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일월서각,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