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왕실의 불교신앙
1. 태조의 불교정책
2. 태종의 불교정책
3. 세조의 불교정책
4. 세조의 불교정책
Ⅲ. 사대부의 불교신앙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원나라 지배기부터 침체를 거듭한 한국불교는 고려 말에 이르러 국가종교로서의 찬란함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에 비해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지지로 유학은 점차 발전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인 신진사대부와 결합한다. 이들은 국가 재정 및 국역자(國役者)의 증대를 위해 사원경제(寺院經濟)를 해체하고 유교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 위해 불교를 배척한다. 신왕조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이 같은 불교배척의 이유와 목적은 그대로 적용된다.
퇴계이황은 한국불교사를 신라불교는 향상시대(向上時代), 고려불교는 평행시대(平行時代)라고 하였다. 조선시대는 조선불교사전기를 나누어 태조로부터 문종 대까지 약 60년간을 압박절정시대(壓迫絶頂時代)라 하였고, 세조로부터 광해 말년까지 약 170년간을 중간명멸시대(中間明滅時代)라고 평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전기의 불교는 고려불교와 비교해 볼 때 비관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외유내불(外儒內佛)이라는 이중정책 속에서 조선불교 나름의 성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배계층도 유교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사회경제적 이념적 변혁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랜 정통성과 내면의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내린 불교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점을 찾아 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기 왕실에 해당하는 태조・태종・세종・세조대에 행해진 불교신앙의 실제 사정을 살피고 조선 초 개국을 주도했던 유신(儒臣)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왕실의 불교신앙
1. 태조의 불교정책
태조 이성계의 가문은 불교신앙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 그의 조부의 출생에 결부된 다음과 같은 전설을 통해서도 엿 볼 수 있다.
“익조가 부인 손씨를 잃은 다음 최씨 부인을 얻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리하여 최씨와 함께 낙산 관음굴에서 기도하니 꿈에 衲衣儈이 와서 말하기를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니 마땅히 이름을 先來라고 할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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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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