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관점에서 본 이상의 시 [오감도]
- 최초 등록일
- 2013.12.21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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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상은 1910년 8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상은 급격하게 기울어 가는 가세 때문에 3살 때부터 부모 슬하를 떠나 큰아버지 집에서 양자로 성장하였다. 1929년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33년 각혈 때문에 기사 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배천 온천에 요양을 가게 된다. 그 후 이상은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차리고 온천에서 만났던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면서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다. 다방 ‘제비’는 당시 일급 문인인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등이 자주 찾았으나 경영이 여의치 않았고, 금홍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곤 했다. 이상은 금홍의 문란한 남자 관계를 방임하면서 금홍의 손찌검에 몸을 내맡겼으며 금홍은 때 묻은 버선을 윗목에 팽개 쳐놓고 집을 떠났고 다방 ‘제비’는 2년 만에 문을 닫는다. 이와 같은 금홍과의 동거 생활에서 우리가 잘 아는 소설 「날개」가 탄생하게 된다. 다방 ‘제비’가 문을 닫은 이후 이상은 여러 번 다방을 열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금홍이 떠난 후 이상은 여급 출신의 권순옥을 사귀게 되지만 친구 정인택의 자살 기도에 둘을 맺어주고, 심신이 고독하여 자살을 생각하지만 화가 구본웅의 도움으로 <창문사>에 취직하게 되어 셋방을 전전하던 형편이 조금씩 풀렸다. 이후 이상은 구본웅의 이복동생 변동림과 혼인하고 「봉별기」, 「19세기식」, 「동해」 등 많은 작품을 쓰지만 결혼한 지 석달만인 1936년 10월,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떠난다. 그의 문학적 열망이 강해지는 만큼 결핵 또한 심해졌고, 1937년 2월, 이상은 사상불온혐의로 검거된다. 검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폐결핵으로 병상에 누웠고 그 해 4월, 이상은 27년의 생을 마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감도」, 「봉별기」, 「날개」, 「거울」 등이 있다.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이상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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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이승훈, 『이상 재조명 - 이상의 「오감도 시 제 1호」』, 시와 세계, 2008, p.196-209
황현산, 「『오감도』 평범하게 읽기」, 창작과 비평, 1998, p.338-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