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론] 독일외교론
- 최초 등록일
- 2003.05.16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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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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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비스마르크의 외교
1. 비스마르크의 전기 독일통일 외교
2. 비스마르크의 후기 보장정책외교
1) 제1차 3제동맹
2) 3중동맹
3. 비스마르크의 종말
1) 3국협상
2) 3국동맹과 3국협상의 대치
Ⅲ. 통일 독일의 외교적 여건
1. 국제적 여건
2. 국내적 여건
Ⅳ. 독일의 통일 외교(1982~1990)
Ⅴ. 통일 독일의 대외정책 추이
Ⅵ.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일반적으로 외교정책이란 개념에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정부적 국제 사회에서 한 국가의 자기 주장’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민족 국가는 필연적으로 전제된다. 민족 국가는 근대 유럽, 특히 서유럽의 근대사적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현대 국제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단위이다. 그러나 독일의 외교정책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려 할 때 적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분명한 지역적 경계를 가지는 하나의 민족 국가로서 규정하기에 독일은 너무나 복잡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냉전 시대의 분단 기간 동안 독일은 엄밀한 의미에서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국가의 성격면에서나 영토면에서 독일만큼 단절이 심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독일 통일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에서 세력균형의 유지를 목표로 하는 ‘빈 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한다. 빈 체제하에서 유럽의 열강들(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은 중부 유럽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전쟁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저지하고, 유럽에 새로운 세력 균형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성공적인 외교력의 결과였다. 비스마르크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독일을 고립시키는 주변 열강들의 연합이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비스마르크는 각국들과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 어떠한 영토적 야심도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당시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제국주의적 경쟁에 끼어들지 않는 정책을 표방함으로써 열강으로부터 독일 통일을 인정 받고 유럽에서 새로운 세력 균형 정책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1차대전의 패전과 잇따른 나치 정권에 의한 2차대전의 패전으로 마침내 독일은 서독과 동독 두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러나 1990년 재통일의 결과 민족 국가로 재탄생된 독일은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서 변화된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외교적 역할을 국내외적으로 요청받고 있다.
참고 자료
현대 지구촌 외교사, 백봉종 지음, 도서출판 선인
세계 외교 정책론, 구본학 외, 을유문화사
http://maincc.hufs.ac.kr/~deu2/germany/16-2.htm
http://home.donga.ac.kr/~deutsch/jahrgang%201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