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제일교회와 선교사 가옥으로 보는 선교사들의 활동
- 최초 등록일
- 2013.11.28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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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조사 유적 소개
Ⅱ. 선교사가 본 공주
Ⅲ. 선교사의 전도 활동
Ⅳ. 선교사의 교육 활동
Ⅴ. 의의
본문내용
조사 목표: 1900년대 초 공주지역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의 전도 활동과 근대식 교육 활동에 대해 알아본다.
Ⅰ. 조사 유적 소개
1. 공주 제일교회: 등록문화재 제 472호, 설립자 맥길, 설립년도 1903년, 건축 연도 1930년, 공주 최초의 감리 교회
2.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등록문화재 제 233호, 설계자 사, 준공 연도 1905년, 공주 최초의 양옥
Ⅱ. 선교사가 본 공주
당시 충남지역 지방 행정의 중심지(충청감영), 강한 보수 성향
→서양 종교가 자리 잡기 어려운 여건
스웨어러(W.C.Swerer, 徐元輔): 선교지로서 공주지역의 중요성 강조
<중 략>
조병옥(신간회 창립위원, 내무부 장관), 황인식(초대 충남도지사), 신현구(대한독립애국단 조직), 윤창석(2.8 동경유학생 독립선언), 유우석(유관순의 오빠, 공주지역 만세운동 주도)
현재에도 영명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인 것처럼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여성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샤프 선교사 사망 후 한국을 떠났던 부인 사애리시 여사는 1909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명선 학교를 영명 여학교로 개칭하고 교육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후 영명 여학교 역시 영명 남학교와 마찬가지로 여성 독립 운동가 및 각계의 여성 지도층을 배출하게 된다.
유관순(영명 여학교 재학 중 사애리시 여사가 이화학당으로 전학시킴), 박화숙(성악가, 공주지역 만세운동 주도, 이묘묵의 부인), 김현경(공주지역 만세운동 주도, 유관순의 시신 인수), 노마리아(한국 최초의 여자경찰서장), 전밀라(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