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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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길고 어두웠다. 나는 복도 반대편 끝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환하게 밝은 저쪽 끝에서 누구라도 나올 법 했지만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 3층 성형외과 앞 대기석은 서늘하고 음침하고 불편했다. 나는 그 바늘방석같은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하도 매만져 모서리가 눅눅해진 진단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폐쇄성 비골 골절’.
의사는 나에게 수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내 콧날은 어색하게 왼쪽으로 휘어있었다. 부딪힌 직후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흘러나온 코피를 보면서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수술을 권유받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수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술대에 누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수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묵직했다. 누군가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해줄 수 있으면서 내게 몰려오는 부담감을 나눠 줄 사람이 절실했다. 스무 살을 한참 넘긴 청년이 하기에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래서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천명관은 2004년 <고래>를 통해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현란한 구어체의 서사와 방대한 스케일로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가 이후에 펴낸 그 외의 작품은 <고래>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이거 한 번 읽어봐, 수술을 위해 잠시 떠나는 내게 친구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바로 그 천명관의 새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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