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초대교회 여성들
- 최초 등록일
- 2003.04.29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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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1. 전도부인
1) 명칭
2) 경제적 대우
3) 규모
4) 교육기간
5) 역할
6) 전도부인제도의 확립
7) 한국교회의 교권화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
2. 한국 교회의 처음 여성들
1) 복음을 받아들인 처음 여성들
*김세지
2)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여성들
*남자현
3) 민족과 교회를 위해 몸바친 여성들
나오는 말
참고자료 목록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19세기 말 남성위주의 전제 봉건주의 사회분위기가 유세를 떨치던 시기,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오직 남성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인내만을 강요받으며 가난과 질병, 무지와 고통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야했다. 여성들의 비인간적인 지위는 선교사들의 보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여성들의 지위를 "노예 같은 삶"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보고에는 한국 여성들은 "일만 하는 고된 생활을 하고 있어 나이가 30세밖에 안되었는데 50세로 보인다"라고 쓰기도 하며, "한국에는 4계층이 있는데 모두 외출도 할 수 없는 노예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주체적 자아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노동력과 남아출산의 의무만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던 여성들에게 낯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여성들은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온갖 조롱과 수모를 받고 심지어는 문중에서 내몰리면서도, 수많은 여성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전통 사회 속의 한국 여성들은 성(姓)만 있고 이름은 없었다. 부계사회 속에 여성들은 부친의 성을 따 이씨, 김씨, 박씨 등으로 불렸고 간혹 이름이 붙여질 경우에는 작명(作名)의 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천하고 상스런 이름들이 붙여졌다. 부뜰이, 섭섭이, 개똥이, 막순이, 딸그만이 등이 전통사회 여성들에게 붙여졌던 이름들이었다. 사실 전통사회 속에서는 여성에게 이름의 기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려서는 누구집 딸로, 결혼 후에는 누구 댁으로, 자식을 나은 후에는 누구 어멈 혹은 할멈으로 불렸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칭호였다. 이름 없음은 곧 '존재 없음'의 의미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름 없는 한국 여성들에게 이름 찾아주기 운동을 편 것이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름 없는 한국 여성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그와 함께 여성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렇게 이름을 가지게 된 여성들은 그 시대에 이름 값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복음을 위해, 민족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일하였다.
참고 자료
이덕주. 『한국교회 처음여성들』기독교문사, 1993.
----- . 『한국감리교 여선교회의 역사』기독교 대한감리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1991.
양미강. "초기 전도부인의 신앙과 활동" 『한국기독교와 역사』(1992.11).
----- . "참여와 배제의 관점에서 본 전도부인에 관한 연구』(1997.2).
장현주. "여성 세례와 여성 해방"『한국기독교와 역사』(19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