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와 경제윤리
- 최초 등록일
- 2013.11.10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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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디아코니아
Ⅲ.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
1.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
1)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
2) 재난을 당해서 가난해진 사람들
3) 착취당해서 가난해진 사람들
4) 개인적 희생의 결과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
2.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디아코니아적 윤리
Ⅳ. 무엇이 문제인가?
1. 개신교
2.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
3. 미국과 서유럽
Ⅴ. 경제학과 기독교 윤리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오늘날 세계는 강대국의 약소국가에 대한 분리지배정책으로 인권이 유린된 착취와 억압의 시대이며,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경제침략의 시대다. 이러한 총체적 원인에는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이 성경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경시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6세기 초에 천주교가 면죄부를 판매할 만큼 타락하였을 때 신부(神父) 마틴 루터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봉건영주들에게 디아코니아를 국가의 의무가 되게 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사조시기에 이성(理性)을 척도로 성경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디아코니아도 왜곡되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을 신성이 아닌 인간 예수로 보았고 단순히 사랑의 교사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종교관은 자율적 인간 이성에 기초한 칸트의 입장을 따라 신에 대한 개념을 거부하고 디아코니아를 다차원적 의미로 시도하였고 신자유주의 신학은 다원성의 원리에 의해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켰다. 즉, 가난을 자율적 인간의 근간으로 다루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 략>
이제 오늘의 세계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협동하는 공공심 없이는 자본주의도 더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까지는 자본주의에서 물질적 소유(material capital)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 신뢰와 배려, 소통과 합의 등의 ‘사회적 관계 자본’(social capital)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어떠한가? 기독 여러 단체들이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디아코니아가 존재하지 않는 경제적 의미에서 물질주의(부의 축적을 개인 및 단체의 관심의 최절정에다 두는 세계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겨우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예배당을 초대형으로 거대하게 짓는 것이다. 그게 자신들의 힘이 된다고 착각한다. 때로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신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디아코니아적인 흉내를 낸다. 물질적인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의 정반대로 이 세상의 힘을 쌓아 가고 있다.
참고 자료
김옥순 『디아코니아 신학』서울:한들출판사,2011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서울:갈라파코스,2008
고범서외7 『기독교 윤리학 개론』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7
이상아 『신자유주의를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로』서울:도서출판 밈,2010
티머시 켈러 『살아있는 신』서울:배가북스,2010
cafe.naver.com/samgakyouth/4337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