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수도 이전의 과정과 지배세력의 변천과정
- 최초 등록일
- 2013.10.30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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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수도이전
1. 한성 시대의 도읍지
1) 위례성의 어원
2) 하북위례성
3) 하남위례성
Ⅱ. 수도이전에 따른 지배세력의 변천
2. 한성시대
3. 웅진시대
1) 웅진천도의 계기
2) 웅진시대의 지방통치와 귀족세력의 변화
3) 웅진백제의 발전과 전개
4. 사비시대
1) 사비시대 지배세력의 변천
2) 대성8족
3) 대외관계
Ⅲ.정리
Ⅳ.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수도이전
1. 한성 시대의 도읍지
-위례성의 어원
위례성(慰禮城)은 백제 초기에 해당하는 한성시기(BC 18~AD 475)의 왕성이었으며, 초기에는 비류/온조세력 등이 첫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그러나 위례성이 도읍지로서의 명칭인지 또는 성읍국가로서의 국호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위례’란 명칭이 성책에 특징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조선 후기의 학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어원에 관해서는 ‘오리’,‘아리’, 어리’, 우리’를 한자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례와 위리는 그 말소리가 비슷하며, 또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위례라고 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무릇 지명이 생겨나는 속성 가운데는 지형지물의 상징적인 특징을 따서 이름이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위례성은 ‘어리재’ 즉, 백제(百濟)로 읽을 수 있다. 또는 백제왕에 대한 호칭인 ‘어라하’에서 비롯된 ‘왕성’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북위례성
초기에는 한강 이북에 도읍을 정하였으나, 한강 이남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게 됨에 따라 처음 도읍한 위례성은 하북(河北)을, 천도한 다음의 왕성은 하남(河南)을 그 앞에 붙여 각각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으로 불렀다. 그런데, 하북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 종래에 위례성이 충청남도 직산에 있다는 직산설과 그것이 한강 북안에 위치한다는 이른바 한강이북설이 있어 왔다. 또 한강이북설에는 다시 삼각산 동록설과 세검정일대설이 제기되어 있다. 후에 조선시대의 관찬 지리지들은 위례성을 충청도 직산현이라 하였다. 그 절대위치는 직산현 성거산 북쪽 5리쯤에 있고, 토축으로 된 성인데 그 둘레는 1,690척, 고 8척, 성내에 우물[井]이 1개이며 지금은 반이상이 무너졌다고 적혀있다.
-하남위례성
한강 이남지역에 위치한 하남위례성은 광주군 동부면 춘궁리(현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이 그것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온조는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면서는 더욱 큰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비류세력과 다시 합하여 국호도 열 신하의 도움으로 세운 국가를 뜻하는 십제에서 수많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백제로 하는 등 중앙집권국가로의 체제를 정비해 나가고 있었다.
천도한 해인 온조왕 14년(B.C. 5) 백제는 마한에 사신을 파견하여 천도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마한과의 국경 획정을 통고하고 있다.
참고 자료
김부식,《삼국사기》백제본기 이재호 옮김, 솔, 1998
박영규, 《백제사 이야기》, 주니어김영사 2006
이도학, 《살아있는 백제사》, 휴머니스트, 2003
일연,《삼국유사》노중국 옮김, 계명대학교출판부, 1999
박현숙,《백제 이야기》, 대한교과서 1999
인터넷-http://www.garimsung.com/ http://cafe.naver.com/rks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