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풍수지리
(1)풍수지리란?
(2)역사적 풍수지리
(3)고려의 도읍 개경의 풍수지리
왕건
1.왕건 설화
2.왕건과 궁예의 만남
3.궁예의 축출
4.왕건의 고려건국과 통일
5.왕건의 통일배경
도선과 풍수지리
도선
도선과 풍수지리설
왕건과 도선의 설화와 실재
풍수지리의 정치적 이용사례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풍수지리
(1)풍수지리란?
- 산의 모양과 기복, 바람과 물의 흐름으로 땅의 뜻을 파악하여, 좋은 삶의 터전을 찾는 것.
- 풍수란 장풍득수에서 온 말, 그 뜻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다는 것. 명당이란 높고 낮은 산이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 작은 하천이 모여 흘러 나가는 입구가 남쪽으로 터져 있는 곳으 로 이른바 배산임수의 여건을 갖춘 곳.
- 양택풍수는 사람의 집자리 명당을 찾는 것, 음택풍수는 조상의 묘자리 명당을 찾는 것.
- 좌청룡, 우백호라는 것은 풍수지리의 한 이론.
- 풍수지리는 현대에도 아주 중요하게 쓰임. 책상의 위치를 놓는것이나, 침실을 어느 방으로 할지 모두 풍수지리의 일환.
- 현대의 지리학은 땅을 오직 물질적이고 사람의 이용에 따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풍수지리에서는 땅을 활물적으로 생각하여 이것이 직접 인생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생물자로 취급하고 있다.
(2)역사적 풍수지리
- 삼국시대에 도입된 풍수사상은 신라 말기부터 활발해 고려시대에 전성을 이루어 조정과 민 간에 널리 보급.
- 한국 문헌에서 풍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탈해왕에 관한 대목에 왕이 등극하기 전, 산에 올라 현월형의 택지를 발견하고 속임수를 써서 그 택지를 빼앗아 후에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음
- 태조 왕건은 풍수설을 신봉해 풍수사상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풍수사상을 기반으로 한 훈요 십조(訓要十條)의 유훈을 내림.
② 사사의 쟁탈, 남조를 금할 것
⑤ 서경을 중시하고, 서경에 100일이상 머무를 것
⑧ 차현 이남 금강 이외의 산형지세는 배역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3)고려의 도읍 개경의 풍수지리
-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지로 정한 개경이 풍수상으로 명당.
-북으로는 송악산, 지네산, 부흥산, 밑으로 용수산. 이렇게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방어에 -유리하고 바람을 막아주고 작은 하천들이 모여서 남동쪽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음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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