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설립목적,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무력대항,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정책,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일관계사료집,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 관리정부
- 최초 등록일
- 2013.09.02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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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설립목적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무력대항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정책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제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일관계사료집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열단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리정부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1948년 1월 이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 이전 역사의 산물이었으니, 여기서는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통일운동의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검토할 것은 우익진영 자체의 동향이다. 해방 직후 임시정부는 환국 과정에서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귀국 후 가장 유력한 정치집단으로 사실상 정부로 자처하였다. 당시 임정의 국가건설방안은 9월 3일 발표한 「임시정부의 당면정책」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의 핵심은 ‘임정의 권력 접수’또는 ‘임정 주도 민족영수회의를 통한 과도정부 수립’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임정법통론’이라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임정법통론은 한편으로는 좌익․북한과 다른 한편으로는 미 당국․이승만․한국민주당진영과도 대립하였다. 이승만은 귀국 직후부터 미 당국의 ‘임정불승인 원칙’을 잘 알고 있었으며, 처음부터 임정의 ‘국무회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미 당국은 1945년 12월 말 임시정부의 권력 접수 시도를 쿠데타로 규정하며 좌절시켰고,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임시정부 해체 공작을 추진하였다.
직접적인 권력 접수가 실패하자, 임정은 1946년 초 반탁운동의 열기를 모아 과도정부를 수립할 모체로 ‘비상정치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하지(J. R. Hodge)의 정치고문인 굳펠로우(P. Goodfellow)의 공작과 이승만의 개입으로, ‘임정법통론의 비상국민회의’는 결국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표민주의원(이하 민주의원)’으로 변질되었다. 민주의원의 성립은 임정법통론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김성숙은 ‘오호! 임정 30년 만에 해산하다’, 조소앙은 ‘임정은 분산되고 독립운동은 낙제를 하게 되었다’고 한탄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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