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경제발전
- 최초 등록일
- 2013.08.19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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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식민지시대
2. 독립 당시
3. 경제발전
4. 인민행동당
본문내용
1. 식민지시대
스탬포드 래플스가 싱가포르를 건설할 당시 싱가포르는 영국동인도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소유로서, 100명 남짓의 인구가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점차 중국, 인도, 유럽, 인도네시아로부터의 이민자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100년이 넘는 영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조용한 어촌에서 조선소, 시장, 교회 등을 갖춘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수출입항(entrepot)을 통해 의약품, 금, 비단, 향료, 차, 아편 등 많은 상품이 모여들게 되었다. 20세기 초 자동차산업이 발전하면서 주석과 고무의 세계적 수요가 급증하고, 이를 수출하면서 정부가 국민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면 독재통치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점령하면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고, 음식물 등 물품이 부족하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싱가포르가 다시 영국식민지가 되었고, 싱가포르는 혼돈을 겪었다. 1963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싱가포르가 독립국가로서 버틸 수 있는지 불확실하여 말레이시아연방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2.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연방이 된 후 2년간 중국계와 말레이시아인 간에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1964년에는 인종문제를 둘러싼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툰쿠 라흐만(Tunku Rahman)총리 등 말레이시아 지도자들은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연방에서 축출하기로 결정하여,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분리되었고, 유소프 빈 이샥(Yusof bin Ishak)이 초대대통령이 되었고, 리콴유가 초대수상이 되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축출당할 당시 싱가포르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1965년 1인당 GDP는 $512였으며, 실업률은 높았고, 상수도 등 사회기반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중국계와 말레이계가 언어와 인종의 차이로 갈등을 겪었고, 서양교육을 받은 중국인과 공산당교육을 받은 중국인 간의 갈등이 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