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도시 알자스에 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08.15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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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자스 지역은 몇 차례 독일의 영토가 되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거리를 걷다가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이는 독일어의 한 부류인 알자스어를 아직도 불어보다 선호하는 알자스 지방 사람들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유럽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복잡한 역사를 지닌 곳이라 평가받고 있는 알자스의 역사에 대하여, 이곳을 둘러싼 프랑스와 독일의 길고도 치열했던 분쟁의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Ⅰ. 알자스 개관
1) 알자스
2) 알자스의 자연 환경
ⅰ) 지역 조건
ⅱ) 기후 조건
Ⅱ. 알자스 역사
ⅰ) 고대 로마 풍의 알자스
ⅱ) 게르만족의 침투와 기독교의 확장(5~10세기)
ⅲ) 신성로마제국의 지배 시기(12~15세기)
ⅳ) 문화 번성의 시기(15세기 말~17세기 초)
ⅴ)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ⅵ) 대혁명 시기의 알자스(1789~1815)
ⅶ) 보불 전쟁과 독일 제국의 지배
ⅷ) 20세기 이후의 알자스
Ⅲ. 알자스 문화재
1) 스트라스부르
ⅰ)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
ⅱ) 구텐베르크 광장
ⅲ) 쁘티 프랑스
2) 콜마르
ⅰ) 생 마르탱 교회
ⅱ) 바르톨디 박물관
3) 뮐루즈
ⅰ) 뮐루즈 국립 자동차 박물관
본문내용
* 키워드로 살펴보는 알자스 역사
1. 스트라스부르 서약
- 프랑스어로 된 최초의 문서(842년)
- 샤를마뉴 대제의 세 손자인 로타르, 루트비히, 샤를 사이의 동맹서약
-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쓰여진 최고(最古)의 문서로, 신하들에게 맹약을 제시하고 협력을 구했다는 점에서 봉건적 주종관계의 성립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료
2.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
- 30년 전쟁을 끝마치기 위하여 체결된 평화조약
- 프랑스는 알자스 지방의 대부분을 확보하게 됨
3.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보불전쟁, 1870)
-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
- 경과 : 1870년 7월 14일, 프랑스 국민과 프로이센 국민 모두 서로에게 분노하였고,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선포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이 전쟁이 방어 전쟁임을 주장하면서 맞대응을 하였다.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프랑스군은 마르스라투르 전투와 그라블로트 전투에서 참패해 괴멸되었다. 스당 전투에서 나폴레옹 3세는 포로가 되었고, 파리 시민들은 파리 코뮌를 세우고 계속 독일군에 저항하였으나 4개월 만에 항복하고 만다. 프로이센군은 파리에서 시가행진을 하였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한다. 이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아주 굴욕적인 일이었다.
4. 프랑크푸르트 조약(1871)
- 보불전쟁의 종전 결과 체결된 조약
-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하며, 배상금 지불이 완료될 때까지 프 로이센군이 주둔한다
-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 할양한다
5. 베르사유 조약(1919)
- 제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
-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시 프랑스에 반환
6. 제 2차 세계대전과 나치독일(1939~1945)
-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 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 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
- 1940년 6월, 독일군은 파리에 입성하고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
- 1944년 파리가 해방되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알자스는 프랑스의 영토가 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