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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나뭇잎

세상이 온통 불꽃이다. 바람은 여름 내내 기죽어 지내다 근원 모를 청량한 입김을 뿜어대고, 이따금 귀밑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귓불이 시릴 정도의 기세로 가슴까지 관통하며 하늘에 그대로 스며든다. 치자단무지 같은 은행나무 잎들이 바람에 살며시 흩날리며 그 농염한 자태를 더했고, 온몸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있는 단풍잎은 가을의 본 축제를 알리기 위해 부지런히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상이 축제의 성배를 마시기 위해 심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는 가평 용추계곡에 단풍놀이를 갔었는데, 너무나 선명한 단풍이 물 위에 비치는 것이 아니라 은비늘 물결 위에 바늘로 한땀한땀 수놓은 듯하였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은 때로는 인간에게 성찰의 특권을 주는데, 이 형언할 수 없는 선경에 나는 나 자신을 더욱 낮춰 겸허한 저 계곡 물 속으로 떠밀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 가슴 설레는 계절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다가와서 내 마음을 터뜨릴 때면 또다시 축제를 즐길 여유와 준비가 되어 있지만, 2년 전 그 때 그 일이 생각나 그냥 가을 풍경 속에 녹아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소위 ‘미친 중2병’이 적어도 내가 속해 있던 또래집단에서는 확실히 전염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사춘기를 나름 적절하게 보내고 있었고, 또래의 우정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애정어린 간섭에 항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므로, 어떤 형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와도 그것은 예리한 칼날로만 받아들여졌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밖에서는 모범생으로 분류되어 항상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집이라는 긴장 해소 공간에 들어서면 모든 스트레스를 어머니께 다 풀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양파 같은 채소를 썰다 눈물을 흘리시곤 했는데, 그것은 자연발생적인 눈물이 아니라 사춘기 딸의 철없고 상처주는 언행을 가슴에 삭이면서 찌걱찌걱 배어나오는 한의 엑기스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모습조차 구차하게만 느껴졌다. 자아가 확실히 형성된 시기에 책임을 동반하지 못한 ‘나’의 권리는 엄청나게 팽배해 있었고, 그것이 학교에서는 학생들 전체의 무슨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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