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동복지 발달의 역사(사회구호,선별적 아동보호,보편적 아동복지 지향,보편적 아동복지 실시)리포트 A+
- 최초 등록일
- 2013.06.27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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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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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사회구호 단계 : 1945~1950년대
Ⅱ. 선별적 아동보호 단계 : 1960~1970년대
Ⅲ. 보편적 아동복지 지향단계 : 1980~1990년대
Ⅳ. 보편적 아동복지 실시 단계 : 2000년 이후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대적인 의미의 우리나라 아동복지는 일반적으로 1945년의 해방과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로 보지만, 그 이전에도 아동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이 있어 왔다. 전통사회에서는 부모가 사망한 고아와 자연재해에 의한 기아를 홀아비, 과부, 독거노인과 함께 네 종류의 빈궁한 백성(환과고독)으로 분류하여 고아와 기아에 대한 구제를 시행하였다. 수용시설을 이용한 아동복지는 조선시대 말 서양인 선교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파리외방선교회가 설립한 조선영해회는 1854년에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1888년에는 종로의 수녀원 부속으로 고아원을 설립하여 아동을 양육하였다. 1886년에는 미국선교사 Underwood가 고아들을 모아 예수학당·구세학당을 시작하였고, 1892년에는 영국선교사 Landis가 인천에 고아학원을 설립하였고, 1923년에는 구세군이 서대문 밖에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현대적인 의미의 한국 아동복지의 변천 과정은 아동복지의 대상과 수준을 기준으로 1945~1990년대의 보편적 아동복지 지향 단계, 2000년 이후의 보편적 아동복지 실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Ⅰ. 사회구호 단계 : 1945~1950년대
사회구호 단계는 1945년 해방 이후 1961년 아동복리법 제정 이전까지의 시기다. 이때에는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수많은 전쟁고아와 기아, 미아들을 수용보호하는 응급구호에 치중하였다. 아울러 아동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많은 수의 외국 원조기관들이 국내에 들어와 아동을 위한 시설들을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고아들의 해외입양이 시작되었고, 기독교아동복리회(CCF, 한국어린이재단으로 명칭 변경), 양친회, 선명회(월드비전으로 명칭 변경) 등이 아동복지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단계에서 형성된 수용보호 중심의 아동복지는 이후 요보호아동에 대한 한국아동복지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급증한 고아, 미아, 기아를 수용하기 위하여 민간 독지가와 외국 원조기관의 지원에 의해 설립된 아동수용시설은 1960년에 472개에 이르러 전체 사회복지시설 592개 중 80%에 달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The Child Welfare Challenge: Policy, practice and research / 2000
From Poor Law to Welfare State : A history of social welfare in America / 1994
미국의 복지개혁과 한국의 생산적 복지의 비교 연구 : 사회복지 발달사의 관점에서 / 사회복지정책 제13집 / 2001
아동·청소년 복지론 / 서울대학교 출판부 / 2004
Introduction to Social Welfare /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