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의즉위/측근세력/맺음말
- 최초 등록일
- 2013.05.21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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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의종의 즉위
Ⅱ. 의종의 측근세력 구성
1. 내시
2. 문신
3. 기타
Ⅲ. 맺음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의종의 즉위
의종(毅宗, 1127~1173년), (재위기간: 1146~1170년)
의종(毅宗)은 인종과 그의 부인 공예왕후 임씨 사이의 맏아들로 1127년 4월 경오일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현(睍), 자는 일승(日升)이다. 1143년(인종 21년)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146년 2월 정묘일에 인종이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고려 제 18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이때의 정국의 동향을 보면 인종대 후반 정국운영을 주도하던 문벌귀족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하여 김부식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들의 독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중 략>
의종의 즉위 초 정습명의 보필을 받고 있었는데, 그가 왕에게 ‘아는 바 말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직언하자, 비록 그의 도움으로 왕이 되긴 했지만 의종은 그를 꺼려하였다. 김당택, 앞의 논문,38쪽, 가문의 배경도 없고 높은 자리에도 있지 않던 정습명의 보좌로 의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던 것은 그 배후에 김부식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의종이 정습명의 충고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 배후세력과의 갈등이 있었음을 예측하게 한다.
이를 알고 정함과 김존중이 밤낮으로 정습명을 비난하였다. 정습명이 병으로 죽자 정함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우승선으로 발탁되었다.
<중 략>
의종은 방종정치의 왕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의종은 지금 방종의 왕으로 비춰지지만 의종에게 총명한 신하들이 있었다면 과연 방종의 왕으로 남았을지.. 설사 의종이 귀족들로 인해 정치적 좌절을 겪고 그의 방탕한 생활은 무신들에 의해 어느 정도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고 무신란 발발 사태에 의종이 저지른 일은 사면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의종은 격구나 시문 또한 잔치나 방탕생활을 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종이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격구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종의 군사훈련이며, 시문을 즐긴다는 것은 그의 재주가 뛰어나서 같이 즐길 사람들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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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2000, 『손에 잡히는 고려이야기』, 늘푸른소나무
《고려사》, 1991, 고전연구실, 신서원
신수정 , 2007, 『고려시대 毅宗과 側近』, <문명연지 제 1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