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을 뒤흔든 십자군 전쟁의 발발과 그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3.05.19
- 최종 저작일
-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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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십자군 전쟁의 동기
Ⅱ 십자군 전쟁의 진행
Ⅲ 십자군 전쟁의 진행
Ⅳ 십자군 전쟁의 의의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십자(十字)‘라는 용어는 천으로 만든 십자가를 옷에 붙인 데에서 유래했다. 당대인들은 이 전쟁에 참여한 이들을 ’순례단‘, ’무장순례단‘, ’성지순례단‘으로 불렀지만 1460년경에 십자군 전쟁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croisade`가 등장했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전후 8회에 걸쳐 감행한 대원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십자군 전쟁은 200여년에 걸쳐 이어졌는데, 이러한 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서유럽세계의 봉건제가 해체되고 카톨릭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것은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는 서막이었다.
<중 략>
가. 봉건제의 해체와 카톨릭의 약화
십자군 전쟁은 봉건 질서의 해체를 가져왔다. 참전했던 영주와 기사들이 원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토지와 도시의 자치권을 팔게 됨으로써 그들의 세력이 약화되었고, 전쟁중에 농노들은 도시로 진출함으로써 봉건적 노동력의 부족을 초래했다. 동방으로부터의 화약의 도입은 기사 계급과 중세 성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한편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 세계의 정신적 기초였던 카톨릭의 변질을 가져왔다. 그 첫 번째가 교황권의 실추이다.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던 때에는 교황권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교황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 세력을 비잔티움 제국에까지 확대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교황은 십자군의 지휘권을 쥐는 데 실패했고 신앙상의 목적에서 일탈되는 정복행위를 막지 못하여 그 권위가 실추되기 시작했다. 결국 교황은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에 세속군주에게 끌려 다니게 되었다.
참고 자료
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W.B 바틀릿, 서미석 옮김
세계사의 모든지식 앨런벌록 외 5명, 이민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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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洋史槪論 - 민석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