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中代 王權의 성립과 金欽突난
3. 眞骨貴族勢力과 王權
4. 外戚勢力과 王權
5.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김부식은 삼국사기 에서 신라사를 上代·中代·下代의 三代로 구분하였는데, 이 구분은 왕계의 변화를 기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그러나 삼대의 관념은 왕계의 변화 뿐 아니라, 新羅에 나타난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등 여러 측면에서의 변화에 따라서 당시 신라인들 자신도 일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2) 이 가운데 중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진골 출신의 무열계가 왕위를 독점하였던 시대로서 신라사를 살피는데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라중대에 대한 연구는 중대말의 정치적 변혁을 살핀 이기백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3) 이후 신라중대에 정치적 변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어졌고, 이들 연구는 중대는 국왕에게 집중된 전제왕권이 형성된 시대라는 이기백의 견해가 대체적인 시각을 이루었다.
<중 략>
경덕왕이 지지기반을 구축하여 정국을 주도하려고 할 때 외척세력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당시 대표적인 외척이었던 김옹이 경덕왕 19년에 시중의 지위에 나아갔음이 주목된다. 이것은 경덕왕의 정국 주도에 외척세력의 반발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43) 이러한 반발은 정치상황의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경덕왕은 두 세력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세력을 동시에 퇴진시켰다.
M-1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이 물러났다 ( 삼국사기 , 경덕왕 22년).
이것은 경덕왕이 김옹을 견제하고자 김신충까지 동반 퇴진 시킨 것으로 이해된다.44) 이후에도 경덕왕은 외척중심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했으며 외척들의 정국 운영은 강화되어 갔다.
5. 나오며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신라중대의 정치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았다. 신라중대의 정치는 상대와 하대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상대는 전통적 族的 기반이 강조되는 귀족적 성격을 해체하고 중앙집권화 내지 왕권 강화를 향해 나아갔다면, 하대는 국왕 중심의 권력이 무너져 중앙 귀족들 간의 갈등과 대립된 상황으로 전개되어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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