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금강산
- 최초 등록일
- 2013.04.26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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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금강산 개관
2.금강산 구역에 따른 선인의 시보기
3.금강산 자체를 찬송한 선인의 시보기
본문내용
1.금강산 이란?
태백산맥 북쪽에 우뚝 솟은 금강산, 남북의 길이가 60킬로, 동서의 너비가 40킬로 면적은 530평방킬로, 주봉 비로봉의 높이는 1천639미터, 톱날 같은 일만 이천 봉우리가 그 둘레를 경호 하고 늘어섰다. 동쪽의 외금강은 우람한 남성미를 자랑하고, 서쪽의 내금강은 섬세한 여성미를 자랑하며,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해금강은 출렁이는 파도위에 기묘하게 떠있는 바위가 신비스럽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돌문, 굴, 바위, 절벽, 폭포, 계곡, 담수호, 낙락장송으로 이루어진 절경의 명산이다. 봄의 바위는 보석처럼 빛난다 하여 금강산, 여름에는 신선 이 찾아든다 하여 봉래산, 가을에는 단풍잔치의 절정이라 풍악산이라 불리고, 겨울이면 괴석과 흰눈이 너무나 어울려 개골산이라 불린다. 현재까지 문헌기록상 가장 오래된 금강산 이름은 <삼국사기>에서 개골산(금강산 봉우리들이 모두 뼈를 드러낸 것 같다는 뜻)과 상악산(멧부리가 서릿발 같다) 이라고 한 것과 <삼국유사>에서 진표 율사의 행적을 말하면서 풍악산(단풍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12~13세기 고려 중엽까지 두루 사용하였다.
천하명산 금강산
중국인들은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라 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 진 금강산의 경치
금강산은 산악 숭앙의 내력을 지니고 있는데 산의 의미는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단군신화때는 신성한 산을 내세웠다. 신라 시대에 그리 중요시 되지 않던 금강산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기행문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널리 숭앙되는 산이었으며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금강산은 다정한 느낌의 의미를 지니고있고 금강산은 다른 어떤 산보다 이름이 다양하고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1.신라시대의 금강산은 화랑의 무리가 수련을 하는 장소이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또한 특별한 수도를 하는 신이한 장소이며 탈속의 장소였다.
2.고려시대의 금강산은 고려 후기의 이름난 문인들이 다투의 사선의 전승을 다시 작품화하고 회고의 상념으로 금강산이 민족의 정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고려후기 원나라 간섭기에는 민족의 자부심을 나타내기 위해 금강산 상징을 적극 이용했으며 고려후기의 금강산 기행 시문은 거의 경치를 기린 내용 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