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화폐거래]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정의,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특징,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형성,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상업화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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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정의
Ⅲ.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특징
Ⅳ.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형성
Ⅴ. 화폐거래업(화폐거래자본)의 상업화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삼국시대까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귀금속이나 포․곡이 화폐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조공․세부(稅賦) 등에 사용되었고 특히 귀금속은 귀족 사회의 애완물로 복식이나 부장(副葬)에 이용되었다.
신라통일시대에 들어와 금은무문전(金銀無文錢)이 만들어졌는데 이도 역시 귀족의 애완물로 민간의 교환 경제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포․곡이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고려시대 화폐제도의 변천은 물물교환 경제의 형태를 탈피하여 자못 화폐의 전발전과정을 경험하였지만 고려 봉건 사회의 전경제적 후진성에 제약되어 화폐의 광범한 실행을 보지 못하고 신용 물물 교환의 영역을 이탈하지 못한 채 그쳤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화폐발달의 장애를 꼽는다면 국가가 화폐의 사용을 장려하면서도 한편으로 조세 및 공물수납에 있어서 의연 현물 수납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에 있어서 미․포에 대한 통용적 가치가 더욱 커진 사실을 들 수 있다. 조선 초기의 화폐들은 ㉮일반 국민의 주화에 대한 이해부족 ㉯주화 및 저화의 소재가 효용성이 전혀 없거나 명목을 따르지 못했다는 점 등의 이유로 화폐가 발달하지 못했고 17세기 후반기 이래 숙종 때 상평통보가 주조된 이후가 되어서야 주전사업이 대대적으로 성행되어 많은 양의 주화가 시중에 거래되어 경제계는 화폐 교환 경제로 전환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주전 사업은 막대한 이득이 남는 까닭으로 각 감영(監營)은 다투어 주전의 허가를 얻어 이익의 일부를 정부에 상납라고 각 감영의 재정에 보충했기에 숙종 이래 화폐의 난발로 주화가 일정치 못하여 그 공신력이 떨어지므로 정종 10년(1786)에는 호조․선혜청에만 연례주전제로 전담토록 하였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고종 3년에는 상평통보 당백전을 주조하여 국고피폐를 구하고자 하였다가 회수하였고 고종 20년에는 상평통보 당오전을 주조하였다가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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