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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4.11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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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공업의 집적
Ⅲ. 공업과 공업화문제
Ⅳ. 공업과 신흥공업국
Ⅴ. 공업과 정밀화학공업
Ⅵ. 공업과 자동차공업
Ⅶ. 공업과 비료공업
1. 비종별 제조 방법, 특성 및 국내현황
1) 질소질 비료
2) 인산질 비료
3) 가리질 비료
4) 복합비료
2. 우리나라의 비료 공업의 현황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인력밖에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품이란, 섬유제품, 운동화, 가발 등의 제품, 전자제품 조립 등 여공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들 여공들의 노임이 달러로 환산했을 때 국제 경쟁력이 없었다.
1964년 초만 하더라도 시간당 노임은 일본이 미화 56 센트(¢), 한국이 20 센트(¢)였다. 전후(戰後) 일본은 일찍부터 섬유제품 등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 최신 설비를 설치했고 공정(工程)도 개선해서 1인당 생산량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품질도 고급화해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고, 수출망도 구축돼서 안정적인 판매를 할 수 있었다. 환언하면 인건비가 올라가도 이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싼 물건은 대만에 위탁 ․ 가공시키고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상대할 입장이 못 되고, 목표는 대만 등 개발도상국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대만의 노임은 시간당 20 센트(¢)로서 우리나라와 똑같았다. 인건비가 똑같은 조건하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는 대만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朴 대통령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일대 결단을 내렸다. 당시 환율 130원 : 1$를 약 2배인 255원 : 1$로 인상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나라 인력의 시간당 평균 노임은 미화 10 센트(¢)로 되고, 비로소 대만이나 태국, 필리핀보다 싸져 국제경쟁력을 갖게 됐다(註 : 시간당 10 센트(¢)라면 월간 20달러이다). 이러한 값싼「인력」이「우리나라 공업의 수출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국가적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유일무이한 자원이 되었던 것이다.
산업 혁명
공업의 수출체제로의 전환은 순조롭게 출발됐다. 1964년 11월 30일에는 朴 대통령이 지시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 정부는 이 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하고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거행했다. 그리고 그 해 말에는 상공부 수출목표 1억 2천만 달러를 달성한다. 전년 대비 43.2%의 증가율이었다. 다음 해에도 공산품의 수출이 순조롭게 증가해서 수출총액은 급격히 증가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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