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구 소련의 고려인 ( 러시아 때문에 웃다가, 러시아 때문에 운 고려인 )
- 최초 등록일
- 2013.04.04
- 최종 저작일
-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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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해주 고려인 사회의 형성
2. 고려인 강제이주의 배경
3. 고려인 강제이주의 시작과 과정
4. ‘까레이스키’의 기적
5. 끝없는 방랑을 멈추다. 마음의 고향 연해주로
본문내용
현재 ‘고려인’이라 불리는 한인들은 1937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연해주에서 머나먼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구소련 해체 후 자신들의 마음속 고향인 연해주로 다시 재이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지만, 2007년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재조명 받게 되었다.
연해주 고려인 사회의 형성
“한인 13가구가 빈곤과 굶주림 및 착취를 피하여 비밀리에 이주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해줄 것을 요청한다”
한인들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19C 중엽이다. 당시 국경 감시소 책임자가 연해주 총독에게 보낸 공식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이주 시기는 1863년이다. 이 당시 조선의 심한 기근과 조선 북부지방에서 발생한 대홍수 그리고 양반들의 착취와 억압은 한인들의 이주를 재촉하였다.
당시 구소련 정부는 변방지역을 개척하기 위한 욕심으로 한인이 연해주에 이주해 오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토지까지 제공해 주었을 정도로 한인의 이주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1905년 국권박탈, 1910년 강제 한일합방으로 인한 일제의 억압은 일반인 뿐 아니라 독립 운동가들의 이주를 촉진시키며 극동 러시아의 고려인 사회를 더욱 커지게 한다. 이 후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인 사회는 크게 확장되어 한글 신문이 발행되었으며, 대한민국 독립 운동가들의 근거지가 되었고 우리나라 독립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37년 스탈린 정부에 의한 강제이주 전 연해주에 거주하였던 고려인은 최소 20만명 이상 이였다. 이들은 소련인들 마저 포기한 척박한 극동러시아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소도, 농기구도, 윤택한 땅도 없는 척박한 자갈밭에서 고려인의 끈기와 인내심으로 자신들만의 새로운 사회를 일궜다.
참고 자료
이상근, 러시아 중앙아시아 이주한인의 역사, 국학자료원, 2010
KBS,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특별기획“귀향”(VOD), 2007
KBS, 다큐3일-연해주 고려인 마을 72시간(VOD),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