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간의 민간인 학살과 진상규명운동
- 최초 등록일
- 2013.03.31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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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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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학살의 세기 속 한국
2. 한국전쟁기간동안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분류
3. 민간인 학살의 실제
1) 제주 4.3 사건
2) 여수, 순천 사건 (여순사건)
3) 보도연맹 사건
4) 강화도 학살
5)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6) 기타 사건들
4. 진상규명운동
본문내용
1. 학살의 세기 속 한국
20세기는 학살의 세기
20세기에는 많은 학살이 일어났다. 수많은 학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우리가 나치라고 부르는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반유대주의와 게르만민족 우월주의에 따라 600만이 넘는 유대인과 집시, 공산당원 등이 학살당했다. 심지어 학살 속도가 느린 총살을 대신해 독가스를 이용한 학살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수필인 안네의 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처럼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대학살이 일어났다. 바로 1937년에 일어난 난징(남경) 대학살이다. 국민당의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이 사건으로 수많은 중국인이 희생되었다.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는 희생자의 수를 15만 명으로 결론지었고, 중국 측은 30만 명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3년에는 간토(관동) 대지진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가운데 전 일본에서 조선인, 중국인 등 외국인 6천 명이 넘게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다. 또한 태평양 전쟁의 빠른 종결을 위해 미국이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인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17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부상자와 낙진 피해자가 발생했다.
<중 략>
4. 진상규명운동
사건은 은폐되었고, 진실은 조작되었다!
학살사건의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시의 사건에 대해 잊지 못한다. 따라서 당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에 문을 두드리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사건은 은폐되었고 진실은 조작되었다. 1949년 12월 경북 문경 지역에서 국군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호적에는 가해자가 국군이 아닌 ‘공비’로 기록되어있고, 경남 거창에서 국군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호적에는 ‘사유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60년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경남 산청지역 피학살자 유족들은 빨갱이로 취급하여 모든 자료를 뺏고 주모자를 투옥했다. 피학살자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총력안보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 국군의 신뢰도를 해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희생자와 전 국민이 애석한 일이나 평화가 정착된 후 조치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