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공방전><국선생전>시대 상황, 줄거리, 작품의 감상, 소설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2.12.20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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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치원><공방전><국선생전>
작가와 시대 상황, 주요인물과 사건이 포함되는 줄거리, 작품의 감상(비평적 태도의 반영), 소설사적 의의 등의 순서로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최치원>
1.작가와 시대상황
2.줄거리
3.작품의 감상 및 소설사적 의의
<공방전>
1.작가와 시대상황
2.줄거리
3.작품의 감상 및 소설사적 의의
<국선생전>
1.작가와 시대상황
2.줄거리
3.작품의 감상 및 소설사적 의의
본문내용
<최치원>
1.작가와 시대상황
최치원은 신라 하대의 학자·문장가로서, 신라 골품제에서 6두품(六頭品)으로 신라의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최씨 가문출신이다. 특히 최씨 가문 중에서도 이른바 ‘신라 말기 3최(崔)’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 성장하는 6두품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최치원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10년 동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흥가문출신의 기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당나라에 유학한지 7년만인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2년간 낙양(洛陽)을 유랑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다. 그 뒤 당나라의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되었고 표수현위를 사직하고 일시 경제적 곤란이 있었다. 그 후에 많은 관직을 거쳤으며,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러 있는 동안 당나라의 여러 문인들과 사귀어 그의 글재주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29세로 신라에 돌아오자, 헌강왕에 의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이 때 신라는 혼란기를 맞이한다. 최치원은 귀국한 뒤 처음에는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당나라에서 배운 경륜을 펴보려 하였으나, 진골귀족 중심의 독점적인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직(外職)을 원해 몇 가지 관직을 거쳤다.
< 중 략 >
<국선생전>
3.작품의 감상 및 소설사적 의의
술을 의인화한 국성을 위국충절의 대표적 인물로 등장시켜 분수를 모르는 인간성의 비정을 풍자한 가전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주인공인 국성을 신하의 입장으로 설정하여, 유생의 삶이란 신하로서 군왕을 모시고 치국의 이상을 바르게 실현하는데 있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국성은 일시적인 시련을 견딜 줄 아는 덕과 충성심이 지극한 긍정적인 인물로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술을 소재로 하면서도 아첨을 일삼는 정계나 방탕한 군주를 풍자한 `국순전`과는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작자 자신의 사평(史評)을 보면,“국씨는 본래 한미한 농가의 소생으로 기신하여 국사에 기여했으며, 제왕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공이 컸으나, 과분하 은총을 입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혀 그 화가 자손에게까지 미쳤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