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서역기행 노정
- 최초 등록일
- 2012.12.14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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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최초의 기행문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입니다. 펠리오에 의해 어떻게 발견이 되었는지와 혜초가 직접 순방한 40여개국을 서술하였습니다. 40여개국의 간단한 특징과 함께 혜초가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사실적인 기술과 생동감있는 표현이 왕오천축국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차
1.머릿말
2.기행노정
3.맺음말
본문내용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이자 탐험가인 펠리오가 중국 서북부 감숙성 돈황 천불동에서 필사본으로 발견 되었다. 이 필사본은 책명, 저자명이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필사본이였는데 발견 당시 총 227행이 남아있었다. 227행 중에서 완전하게 보존 되어진 행은 210행이고, 총글자는 5893자이다. 종이 아홉장을 이어 붙인 이 필사본의 총길이는 358cm였다. 이 불완전한 필사본은 펠리오에 의해 혜초가 쓴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펠리오는 이미 당나라 승려 혜림 중국 당나라때의 승려로 중국 고전의 훈고(訓詁)와 음운(音韻)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를 저술하였다.
(慧琳, 737 ~ 820)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를 통해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고, 우연히 장경동에서 이 여행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중 략>
不慮菩提遠(불여보리원)-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焉將鹿苑遼(언장녹원요)-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멀다 하리오. 只愁懸路險(지수현로험)-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되지만. 非意業風飄(비의업풍표)-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八塔誠難見(팔탑난성견)-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參著經劫燒(참착경겁소)-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何其人願滿(하기인원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目覩在今朝(목도재금조)-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중 략>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기가 만들어졌다. 생명의 위험을 감당하고 당당히 법을 위해 걷기 시작한 도보의 행진 속에 사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닐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보고 듣기 위해서 간 것이 법을 위해 간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법을 위해 몸을 바치는 정신이 아니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법현 이후 혜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구법승들의 행적이 중국 불교사에 나타나고 있다.
참고 자료
왕오천축국전 / 혜초, 704-787 한국갈릴레이 , 2004.
(혜초의)왕오천축국전 / 정수일 학고재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