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항해를 위한범선 탄생
- 최초 등록일
- 2012.12.11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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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대륙 개척 시기에 원격항해를 위한 범선의 발달 과정을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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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대부터 지중해와 그 주변지역에서는 배의 양측에서 밖으로 내밀어진 노를 저어 항해하는 갤리선이 있었다. 한상길, 「향료문화의 발달사」, 『신광출판사』, 2004, pp141-216
갤리선은 근대이전까지 주로 군선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후 상인들에 의해 선저를 둥글게 하여 대량수송능력을 갖춘 갤리상선(galere da mercato)으로 발전한다. 갤리상선의 일차 장점은 속도와 안정성에 있었다. 갤리상선의 주동력원은 돛이었고, 바람이 불지 않거나 입항이나 출항 시는 주로 보조동력인 노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원활하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법천지의 바다에서 200명 정도의 선원이 탄 갤리상선은 상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었다. 당시 해전이 배와 배가 맞부딪치는 접전에 적합하고 지중해에는 계절풍이 없고 바람방향이 불확실하여 범주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노에 의한 인력으로 빠른 기동력과 조종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해전은 배와 배가 맞부딪치는 접근전이기 때문에 빠른 기동성과 많은 전투원이 탑승한 갤리상선이 유리했다.
11세기에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연합군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영국, 베네치아의 상인으로 이루어진 서방연합군
이 조직되면서 국가 간에 기술교류가 성행해진 결과 14세기 중엽에 북유럽에서 사용되던 배가 도입되어 새로운 형태인 범선이 탄생하였다. 북유럽인들은 네모돛을 갖춘 갸름한 구조의 ‘노어’(knorr) 선을 사용했는데, 노어 선은 한쪽 뱃전에 설치한 노로 키를 잡게 되어 있어 빠르고 내항성이 좋아 거친 바다를 항해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적재량이 적은 것이 흠이었다. 1200년 즈음까지 노어 선은 북유럽 전역에서 주로 단거리 무역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선체는 더욱 짧고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해상 전투를 위해 뱃머리와 선미에 전투용 선루(船樓)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1350년 즈음에는 북유럽에서 코그(Cog)라 불리는 원형범선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는 노어가 대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남종국. 「중세 말 지중해 무역의 성격변화」 . 『지중해지역연구』. Vol. 8 . No.1 . 2006.
김성준. 「범선이야기」 . 『한국해양사연구소』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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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길. 『향료문화의 발달사』 . 신광출판사. 2004.
헨드릭 빌렘 반 룬. 『배 이야기-인간은 어떻게 7대양을 항해했을까?』 . 아이필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