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2009년 들어 일본의 정권을 잡게 된 민주당
민주당에서 선출 된 3명의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각각의 동아시아 구상에 대해서 서술한 레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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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2009년 8월에 치러진 총선거에서, 민주당은 308의석을 획득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총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는, 전후 일본 정치사의 중요 국면이었다. 하토야마 정권은 주요 정책의 하나로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제시하였다. 사실 ‘동아시아 공동체’ 라는 것이 등장 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고 성격은 다르지만 1930년대 ‘동아협동체론’과 1940년대의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지역주의 구상이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말해주며, 2002년 1월 고이즈미(小泉) 수상에 의해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나 하토야마 정권은 이전의 자민당 정부와의 차별성을 두며,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일본의 외교상을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고이즈미 정권의 자위대에 의한 미군지원 강화 등으로 일미 관계는 한층 더 긴밀해졌으나, 일본 국내에서는 미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염려와 비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과의 동맹은 유지하되 아시아 중심의 외교에 더욱 힘쓰게 되었고, 하토야마의 첫 외국 방문지로 미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보다 좋은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누었다.
<중 략>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부터 정보수집, 경계감시 등의 활동을 행하고, 국제협력을 강화하며, 자위대의 운용을 중시하여 다기능적이며 탄력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위력으로 발전시킨다는 ‘위협대응형 방위정책’을 채택한 것이다.(통일한국) 한국과는 군사협력을 하기로 협의했으나 한국 내에서의 반발로 인해 제대로 추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다시 센카쿠 열도, 독도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과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기업들이 피해를 보았다. 센카쿠 인근에서는 양국이 군사적으로 대립하여 전쟁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기습적으로 방문하였고, 이에 대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재소하겠다고 반박하는 등 일본의 외교관계는 이례적으로 최악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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