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히로부미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및 다른 인물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2.11.12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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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경대학교 일본의 역사와 문화라는 과목으로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면서
2. 이토 히로부미의
1) 출생과 성장
2) 일본 근대화 업적
3)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 침략
4) 과연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 합병을 추진하였는가
5)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
6) 이토 히로부미와 다른 역사적 인물간의 비교
3. 마치면서
본문내용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실 언제나 그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리곤 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조선총독부통감을 지낸 인물. 필자에겐 오직 그 이미지 하나만 있는 인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인식은 조금 다르다. 일본의 정치발전을 위해 큰 공헌을 한 위인. 근대 일본의 국가체제와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하고 양원제 의회를 수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위인. 한국 쪽에서는 국가의 원수로 여겨지고 일본에서는 위인으로 여겨지는 이토 히로부미.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이는 어떤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중 략 >
과연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 합병을 추진하였는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토는 합병을 하면 상대적으로 후진국가인 한국의 경제를 위해 일본인들의 세금이 많아질 것을 염려하여 합병을 반대했다는 설, 이토는 처음부터 한국을 식민지에 마음을 두고 합병하기를 원했다는 설, 처음에는 병합이 아닌 독일을 모티브로 한 연방국가의 형태를 원하다가 의병 운동등의 극심한 한국 국민의 반발에 합병을 생각했다는 설등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많은 설이 있다. 그 중 우리나라에서 정설로 받아들이는 설은 처음부터 한국을 식민지에 두길 생각하고 합병하려했다는 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한국을 식민지에 마음을 두고 합병하려 했다는 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한국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것에 대해 궁금해 하던 도중 이토 히로부미의 연설문의 내용을 찾아보면서 이토 히로부미가 원했던 정확한 뜻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로 이토가 1905년 12월 21일 통감에 임명되어 1906년 2월 5일 立憲政友會의 통감부임 송별회 연설문 중 내용을 살펴 보면, ‘일본 쪽에서 보면 한국에 대해서는 매우 괴로운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고 해도, 한편 한국 쪽에서 보면 큰 압박으로 느낄 것이기 때문에 필시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략) 즉 일본의 보호는 그 독립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시키고, 일본은 일본의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호하는 것이지 결코 해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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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동북아역사재단
위키 백과「이토 히로부미」
이종각,「이토 히로부미」, 동아일보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