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관을 쓴 사절 그림 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12.10.23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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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로부터의 통신 책에 나오는 내용을 ppt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고대 한국인의 상징, 조우관.
- 조우관에 관한 역사적 기록들
2.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
- 양직공도
3.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
- 아프라시압의 궁전 벽화
4.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
- 예빈도
본문내용
[1] 조우관 [鳥羽冠]이란?
1. 고대 한국인의 상징, 조우관
변형모라는 삼각형의 고깔모양 모자에
새의 깃털[鳥羽]을 꽃아 장식한 것.
금속제로 조우상(鳥羽狀 )이나 녹이상(鹿耳狀 )을
만들어 달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새의 꼬리털를 한데 묶어 꽂기도 하였는데
이를 조미관(鳥尾冠)이라 하였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귀한 자(귀족)들이 조우관을
썼던 것으로 나타나있다.
<중 략>
현존하는 회화 자료 중 백제인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서는 유일하다
백제라는 나라는 예전의 동이(東夷)로 마한(馬韓)에 속한 나라였다. 중국의 서진(西晉)나라 말기에 고구려의 영토가 요동지방까지 확대되었을 때 요서의 진평현을 다스렸다. 이후로 중국에 조공을 했으며 동진때 전지왕이, 송나라때 비유왕이, 제나라때 동성왕이 중국으로부터 작위(관작)을 받았으며, 양나라 초기에 동성왕에게 정동장군이란 작위를 내렸다. 고구려의 침공을 여러 번 받았는데, 양나라 무제때 무령왕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여러 번 무찔렀다고 말했다. 백제의 서울(치소)는 고마(곰, 공주)라고 부르며, 지방을 22개의 담로(읍)로 나누어 왕의 아들이나 왕족들에게 다스리게 했다. 주변의 작은 나라들인 반파, 탁, 다라, 전라, 시라, 지미, 마연, 상사문, 하침라 등이 백제에 속해있다. 말과 의복은 고구려와 거의 같았고, 두 팔을 벌리지 않고 걸었으며 절을 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다. 관모(冠帽)를 썻으며, 저고리를 복진, 바지는 곤이라 부르는데, 그 말중에는 중국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진한의 풍속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