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
- 최초 등록일
- 2012.06.30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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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음식에 대해 시대별로 나누어 그 변천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선사시대에는 수렵, 채집, 원시적인 농경 등의 방법으로 음식을 해결하였으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식사의 기본 구조가 정립되어갔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벼가 주 작물로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죽 ․ 장 ․ 술 ․ 채소절임 ․ 젓갈 같은 음식의 조리법이 확립되었다. 부엌은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으며, 조리용구가 고안되면서 기본 식품의 조리법이 더욱 발달하였다. 밥을 주식으로 하고 장, 채소절임, 젓갈 같은 기본 식품을 반찬으로 하는 한국인의 보편적 식사형태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불교가 더욱 융성해지고 그 영향으로 인해 육식이 쇠퇴한 대신 채소나 나물 등의 식물성 식품을 보다 맛있게 먹는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사찰요리도 크게 발달하였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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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에는 크게 네 가지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유교의 융성과 음식문화의 변화가 그것이다. 유교의 비중이 커지면서 불교와 함께 차 마시는 풍습이 사라졌다.
둘째로는 숭유주의와 개고기이다. 유교가 국가 이념의 중심이 되면서 공자로의 복고주의로 공자시대에 개고기를 먹고 있었으니 개고기를 먹는데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셋째로는 의례규범과 상차림의 격식 확립이다. 제례식, 혼례식, 상례식 등에 관한 규범을 만들었고, 제찬의 규범은 아무리 가난해도 잡곡밥을 올리지 않고 쌀밥을 올렸다. 이로 인해 상차림의 격식이 갖추어졌는데, 3첩에서 12첩에 이르는 상차림법이 생겨났다. 여기서 첩이란 뚜껑이 있는 반찬 그릇을 말하는 것으로 밥, 국, 김, 장, 찌개 등을 제외한 반찬 그릇의 수에 따라 첩 수를 잰다. 서민들의 상차림은 3첩이 고작인데 반해 사대부 집에서는 5첩, 궁중의 수라상은 평소에도 7첩 내지 12첩까지 차려졌다.
넷째로는 구황식품 개발과 채식문화이다.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는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기근이 특히 빈발하여 보릿고개란 말도 생겼다. 이런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해 백성들은 산야의 풀이나 나무껍질, 열매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찾아내게 되었고 이는 나물과 김치로 대표되는 우리의 채식문화 전통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섯째로는 식기의 변화인데, 고려시대의 청자에서 조선시대의 백자로 변화한 것이 그것이다. 그밖에 식품 저장용의 옹기나 뚝배기 같은 질그릇은 서민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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