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초기 지방제도의 정비과정
- 최초 등록일
- 2012.06.27
- 최종 저작일
- 2011.06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고려초기의 지방제도 정비과정과
태조대의 군현제 개편, 성종과 현종대 지방제도가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태조(太祖)대 군현제 개편
1. 고려 군현제의 개편에 대한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
2. 태조대 군현제 개편
Ⅲ. 성종(成宗)대 지방제도 정비
1. 성종2년 12목의 설치와 지방제도의 개편
2. 성종14년 지방제도의 개편
Ⅵ. 현종(顯宗)대 지방제도 정비
1. 현종대 지방제도의 개편
2. 5도제의 성립
Ⅴ. 맺음말
본문내용
지방제도는 국가가 향촌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므로, 어느 국가든 건국 초기부터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건국 당시 고려의 실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신라 말·고려 초는 우리나라의 역사상에서 매우 큰 격변기였다. 신라의 거의 모든 귀족들은 끊임없이 왕위쟁탈전에 가담하였고 그에 따라 왕권을 약화되었다. 또한 녹읍이 부활되고 행정체계가 부실화 되면서 귀족들은 농민들에 대한 자의적 수탈을 통해 자신들의 사적 기반을 늘려 나갔다. 이에 농민층들은 몰락하게 되었고 또한 이들이 유민이나 도둑이 되고 그 후 조직화 되면서 내부적인 전란이 계속되었다. 진성여왕(眞聖女王)3년(889) 상주(尙州)의 원종과 애노의 반란으로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농민봉기가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겨우 진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지방의 호족(豪族)들이었다.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통일은 그러한 호족들의 공헌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고려 초 태조 왕건은 중폐비사(重幣卑辭), 결혼정책, 사성(賜姓)정책 등을 통해 이러한 호족 세력들을 적절히 회유하였고 또한 사심관(事審官)제도나 기인(其人)제도를 통해 이들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중앙정치권력은 이들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호족세력들의 근거라 할 수 있는 지방에 대한 지배체제를 완벽히 정비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의 군현제(郡縣制)는 먼저 태조대에 비록 지방관이 거의 파견되지 않았지만 여러 군현이 신설되고 또한 승격․강격 되는 등 지방제도에 대한 많은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종(成宗)2년에 전국의 12목에 외관이 파견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지방통제에 나서게 되었고 현종(顯宗)대 이르러 고려의 지방제도가 완성되었다.
참고 자료
역사서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논문
구산우, 「高麗 成宗代의 鄕村支配體制 강화와 그 정치·사회적 갈등」『韓國文化硏究』,釜山大學校 韓國文化硏究所, 1993.
윤경진, 「고려 태조대 군현제 개편의 성격」, 『역사와 현실』, 한국역사연구회 , 1996.
이근수, 「高麗 前期 地方統制의 性格」, 『연구논문집』, 울산대학교, 1977.
단행본
구산우,『高麗前期 鄕村支配體制硏究』, 도서출판 혜안 , 2003.
최정환, 『高麗 政治制度와 祿俸制 硏究』, 도서출판 신서원, 2002.
하현강, 『한국중세사연구』, 삼신문화사, 1988.